이명耳鳴 이명耳鳴 귀가 울었다 아가처럼 순해진 귀가 울었다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문종이처럼 얇아진 내 귓속에서 풀벌레 울음소리 들렸다 고요히 온 숲이 따라 울었다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몸옷 한 벌 몸옷 한 벌 부모로부터 잠시 빌려 입은 몸옷 한 벌 어지간히도 간수하기 힘들다 어릴 적 고주박이 한 짐 걸머지고 새옷 자랑하며 가파른 산길 내려오다 무릎 인대 팍 터져 올올이 기웠는데 자전거 타고 여친 만나러 갔다 급브레이크 잡은 바람 뒤집어지는 통에 왼쪽 대퇴골 부러져 간신히..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환승 환승 구지 가는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지하철 1호선 종착역인 대곡을 빠져나가려던 참 구순 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더니 B2 버튼을 꾹 누른다, 지금 머물고 있는 여기가 오직 이승일 뿐이라는 생각 금세 저승까지 번지고 번져 열린 문 스르르 닫..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혹 혹 몇 해 전 콩알만 한 물혹 생겼다고 콩콩이처럼 옹알옹알 거려도 못 들은 척 스쳐 지났더니 그게 참, 못된 혹 될 줄이야 콩을 팥이라 해도 믿고 살았던 콩팥에게 속았다 장기판 뒤흔든 신腎의 한 수 물려줄 리 만무하다 살얼음판이 되어버린 장기판 이제 내가 둘 차례다 혹, 저 외통수 막..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그런 날 그런 날 가르치는 아이들 앞에서 부쩍 날 세울 때 많다 그런 날은 조금이라도 날 뭉그러뜨리기 위해 하염없이 걷는다 날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날 던져버리기도 십상이다 날 잊어버리고 날이 날 주워 담는 그런 날 서문시장 지나 지하상가 벤치 우두커니 앉아 비켜선 날 찾고 있는 중 반..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산, 그러시네요 산, 그러시네요 故 박달원 선생님 먼 산 바라보며 무심코 산, 산, 산, 그러시네요 산은 살았던, 살아 있는, 살 것은 모두 산이라 그런다고 그러시네요 살아서 한평생 사는 것도 산 것이고 죽어서 한평생 사는 것도 산 것이니 산은 이처럼 둘이 아닌 하나로 사는 것은 다 산이라 그러시네요 ..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벵가 섬의 추억 벵가 섬의 추억 이 세상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 남태평양 피지 벵가 섬 방가! 방가! 맨발로 걸어 나온 원주민들은 나에게 우크렐라 연주하며 노래 불러주었고 열대 향 물씬 풍긴 꽃목걸이 걸어주었다 석기시대 토기처럼 잠든 조개껍데기들은 나에게 문화인류학 강의를 해주었고 군..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눈길 눈길 나뭇가지 겨우 눈 뜬 삼월 함박눈이 내린다 철없는 눈끼리 마주쳤다 30년 전 대퇴부 골절 수술을 받고 반듯이 누워 있는 내 머리맡으로 짜릿한 눈길 스쳐 지나갔다 교통사고 당한 아버지 밤낮 수발하는 여자 내 옆 침대 고꾸라져 새우잠 자고 출퇴근하는 그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병..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서문 야시夜市 서문 야시夜市 군 제대하고 집에서만 빈둥거리는 아들 녀석 세상 보는 눈 좀 틔워줘야겠다 싶어 한여름 밤 서문시장 데리고 갔다 야시장 먹거리 메뉴 이것저것 눈요기하다 맷돌로 갈아 빚는 녹두빈대떡에 시선이 멎다 ‘빈대총각’이라는 이름의 포차에서 한 총각은 사장, 다른 총각은 ..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아직도 이상화가 살아있더구만 아직도 이상화가 살아있더구만 수성못 둑을 돌다 이상화 시비 앞에서 우연히 시비 붙은 영감들 얘기 받아 적는다 아직도 이상화가 살아있더구만 계산 성당 옆 골목길로 몇 걸음 들어서면 오래된 집 한 채 있는디 이상화가 그 집에 살고 있더구만 부엌에 가마솥 하나 걸렸고 마당엔 목마..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