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와 볼 사이 스트라이크와 볼 사이 되돌아보니 당신이 볼을 던졌을 때 나는 스트라이크인 줄 알고 받아쳤고 당신이 마음먹고 스트라이크 던졌을 때 나는 볼인 줄 알고 받아친 게 무려 9할이 넘는다 당신이 던진 공을, 나는 언제나 되받아쳐야만 되는 줄 알았다 방망이가 자주 부러지고 타율이 급격히 ..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한두레마을 염소 이야기 한두레마을 염소 이야기 초등학교 때 나는 염소 동아리 반장을 한 적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근로 장학생인 셈이다 가정 형편 어려운 나는 장학금 턱으로 어린 암염소 한 마리를 받았다 소 키우는 집이 엄청 부러웠던 그 시절 학교만 갔다 오면 나는 염소 고삐 잡고 졸졸 따라다니며 허기..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속울음 속울음 누군가의 등에 업혀 울보처럼 응석부리고 싶을 때 있다 폐교가 된 어느 시골 학교 한겨울 운동장 느티나무 가지에 매미 일곱 남매 망사 같은 허물 한 벌 걸치고 생전 울지 않은 척, 착 달라붙어 있다 속살 다 비친 나뭇가지 사이로 울음 꽉 머금은 아들 녀석 내 눈치 살살 보며 매미..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어떤 셈법 어떤 셈법 초등학교 때 달달 외운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셈법 누구의 경전일까 주먹구구식으로 열 낳아 일곱 건지신 할머니 생각 더하고 빼보면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 손주 녀석들 불러 모아 쌈짓돈 한 푼 두 푼 나눠주는 재미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봄날은 갔다 봄날은 갔다 안지랑 역에서 지팡이 짚은 꼬부랑 할머니가 전철 안으로 들어서자 노약자 석에 앉아있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자리를 양보한다 멀찌감치 유리창에 찍힌 두 노인의 초상이 나의 뇌리 속으로 들어와 잽싸게 앉는다 할머니는 맞은 편 창 위에 붙은 결혼 광고 사진을 뚫어지게 바..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벚꽃, 옷 벗다 벚꽃, 옷 벗다 꼬마아이 손잡고 벚꽃 구경 나온 엄마가 벚나무 아래서 버-꼬옷, 버-꼬옷 그러자 아이가 벗고-옷, 벗고-옷 따라하다 옷을 벗는다 봄바람 눈치 보며 벚꽃도 눈웃음 물결치듯 난분분 난분분亂紛紛 옷을 벗는다 아이와 벚꽃 눈길 걸어가는 엄마도 눈부셔 자꾸만 벗고-옷, 벗고-..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동백섬 동백섬 유람선을 타자마자 허기진 배가 출렁인다 새우깡 한 봉지를 샀다 갑판 가 바짝 붙어 서서 깡마른 새우 몇 마리 방생하고 먹잇감 찾아 발품 팔며 따라오는 갈매기들 입에다 소주 한 모금 적신 새우깡 건넨다 황금 새우 어장이 되어버린 바다 술 취한 갈매기가 파도처럼 울렁거리며 ..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밀월여행 밀월여행 대곡역에서 급행 4번 버스를 타고 종착지인 구지에 내려 낙동강변 자전거 도로 따라 걷다 허니문 숙소로 들어선다, 아 카시아 꿀 쫄쫄 빨아먹는 벌 한 마리 눈 깜짝 할 사이 내 콧등 콕 쏘고 날아간다 흠뻑 취한 아카시아 꽃향기 샘내다 들켜버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꾹 ..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한지 체험 한지 체험 안동 하회 가는 길에 한지마을 들렸지요 어릴 적 딱, 부러지는 닥나무 꺾어 칼싸움 놀이하던 추억 떠올랐지요 그놈의 칼 껍데기 이토록 위대한 업적 남기고 간 줄 몰랐지요 거죽이 좀 거무죽죽해서 그저 칼싸움이나 하다가 버리는 부지깽이 정도로 여겼지요 껍질 속은 얼마나 ..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
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어릴 때 꼬드밥 우물우물 씹어 내 입에 넣어주신 할머니 이가 다 빠졌다 거짓말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네 살 아래 여동생 감쪽같이 속여 요리조리 부려먹고 우려먹은 게 수도 없이 많았는데 덜컥 겁이 났다 그 후로 나는 여동생과 얘기할 땐 '참말로' 라는 말.. ♧...참, 조용한 혁명 2016.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