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자의 노래/신경림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평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참한詩 2010.11.29
나를 열어주세요/나희덕 나를 열어주세요 나희덕 옆구리에 열쇠구멍이 있을 거예요 찾아보세요. 예, 거기에 열쇠를 꽂아주세요. 아니면 태엽이라도 감아주세요. 여기 계속 서 있는 건 아무래도 너무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몇 걸음이라도 걸어야 살 것 같아요. 열쇠를 찾을 수 없다구요? 당신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참한詩 2010.11.20
[스크랩] 속 그늘 외 4편/ 강서완 속 그늘 외 4편 강서완 옹이 없는 나무는 없는 겨. 천둥번개 맞으믄서 땡볕을 건넌 수백 년 아닌감? 골백번 사무친 가심에 온 삭신이 담긴 겨 썩어 문드라지고 그 속 아믈라믄 또 을마나 걸렸것남. 칼끝이 닿으면 피 보는 건 당연지산 겨. 아무리 구든 맴이라 혀도 지픈 속에 풍랑이 고인 겨. 그래도 가심.. ♧...참한詩 2010.11.19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김명인 그 물푸레나무 곁으로 김명인 그 나무가 거기 있었다 숱한 매미들이 겉옷을 걸어두고 물관부를 따라가 우듬지 개울에서 멱을 감는지 한여름 내내 그 나무에서는 물긷는 소리가 너무 환했다 물푸레나무 그늘 쪽으로 누군가 걸어간다 한낮을 내려놓고 저녁 나무가 어스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머리를 .. ♧...참한詩 2010.11.19
선제리 아낙네들/고은 선제리 아낙네들 고 은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 뫼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 ♧...참한詩 2010.11.19
동강, 저 정선 아라리/문인수 동강, 저 정선 아라리 문인수 산을 여는 것은 어디나 초록강입니다. 강원도 정선의 산중을 참 여러 굽이 에돌아 흐르는 동강 물머리를 심호흡으로 깊이 끌어들여 지그시 오래 눈 감아 보시지요 사람의 속이 저와 같이 첩첩하여서 그 노래 또한 얼마나 여러 굽이 애돌아 흐르는지요 강 따라 산 따라 사.. ♧...참한詩 2010.11.17
산문(山門)에 기대어/송수권 산문(山門)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 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 ♧...참한詩 2010.11.09
모퉁이/안도현 모퉁이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 테고 하굣길에 그 계.. ♧...참한詩 2010.11.09
구름과 바람의 길/이성선 구름과 바람의 길 이성선 실수는 삶을 쓸쓸하게 한다. 실패는 생生 전부를 외롭게 한다. 구름은 늘 실수하고 바람은 언제나 실패한다. 나는 구름과 바람의 길을 걷는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구름은 항상 쓸쓸히 아름답고 바람은 온 밤을 갈대와 울며 지샌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길 구름과 바람의 길.. ♧...참한詩 2010.11.09
징검다리/정호승 징검다리 정호승 물은 흐르는 대로 흐르고 얼음은 녹는 대로 녹는데 나는 사는 대로 살지 못하고 징검다리가 되어 엎드려 있다 오늘도 물은 차고 물살은 빠르다 그대 부디 물속에 빠지지 말고 나를 딛고 일어나 힘차게 건너가라 우리가 푸른 냇가의 징검다리를 이제 몇 번이나 더 건너걸 수 있겠느냐 .. ♧...참한詩 201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