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폐사지처럼 산다 외 14편/ 정호승 폐사지처럼 산다 외 14편 정호승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 ♧...참한詩 2010.12.18
봄비/정호승 봄비 정호승 어느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 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참한詩 2010.12.18
농무/신경림 농무(農舞)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 ♧...참한詩 2010.12.12
선운사에서/최영미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처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 ♧...참한詩 2010.12.05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문정희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투옥당한 패장(敗將)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男根)을 잘리우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 ♧...참한詩 2010.12.04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정호승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 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 ♧...참한詩 2010.12.04
달과 수숫대-貧/장석남 달과 수숫대 - 貧 장석남 막 이삭 패기 시작한 수숫대가 낮달을 마당 바깥 쪽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아래쪽이 다 닳아진 달을 주워다 어디다 쓰나 생각한 다음날 조금 더 여물어진 달을 이번엔 洞口 개울물 한쪽에 잇대어 깁고 있었다 그러다가 맑디맑은 一生이 된 빈 수숫대를 본다 단 두 개의 서까래.. ♧...참한詩 2010.12.04
산정묘지1/조정권 산정묘지1 조 정 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頂은 얼음을 그.. ♧...참한詩 2010.11.29
누累 /이병률 누累 이병률 늦은 밤 쓰레기를 뒤지던 사람과 마주친 적 있다 그의 손은 비닐을 뒤적이다 멈추었지만 그의 몸 뒤편에 밝은 불빛이 비쳐들었으므로 아뿔싸 그의 허기에 들킨 건 나였다 살기가 그의 눈을 빛나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환히 웃으며 들킨 건 나라고 뒷걸음쳤다 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쳤.. ♧...참한詩 2010.11.29
뒤편/천양희 뒤편 천양희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참한詩 201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