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이야기 조은길 우리에 감금된 채 털을 빼앗기고 온몸을 난자당해 죽은 짐승이 있다 피비린내 앙등하는 주검위로 불덩이 같은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천년이 흘렀다 살아서 우리를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천년을 하루같이 귀를 쫑긋 열어놓고 빨갛게 뜬 눈으로 지새우게 한다 동을 바짝 웅크리고 낮고 연한 풀잎만을 고집해서 먹는것은 밀림의 시절 검은 독수리를 피하려다 붙은 어쩔수 없는 습관이겠지만 그것이 살결을 연하고 향기롭게 하고 털을 솜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하는 치명적인 결점이 되고 말았다 천년동안 수많은 신이 그들의 우리를 다녀갔지만 그들에게 등을 쪽 펴라든가 낮고 연한 풀잎을 먹지 말라든가 우리는 빠져나가는 기술을 귀띔해 주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