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상국 그늘 이상국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새들도 갈 데가 있어 가지를 떠나고 때로는 횡재처럼 눈이 내려도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 그걸 혼자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누가 뭐라든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나의 그늘이다 ♧...참한詩 2016.07.09
달은 아직 그 달이다/이상국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이상국 나 어렸을 적 보름이나 되어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 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시고는 했는데, 달이 너무 무거워 하늘의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다는 것인지 혹은 당신의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그립게 .. ♧...참한詩 2016.07.09
목백일홍 옛집/이기철 목백일홍 옛집 이기철 연필을 놔두고 나온 것 같다 빨랫줄에 걸린 수건에는 지나가던 소식들이 자주 걸렸다 늘 정직하기만 한 과꽃과의 이별 내가 떠나는 데도 눈빛이 맑던 쟁반 피부가 하얀 접시 깨어지면서도 음악이 되던 보시기 마음을 접고 펴던 살 부러진 우산 화요일과 목요일의 .. ♧...참한詩 2016.07.06
톱날을 썰며/김연대 톱날을 썰며 김연대 비오는 날 한 나절을 추녀 끝 낙수 소리 들으며 축담에 구부리고 앉아 이 빠진 줄로 톱날을 썰고 있다 두 발 사이에 톱을 끼우고 왼손으로 톱날을 잡고 바른손으로 줄을 밀면 이 빠진 줄이 톱날에 턱턱 걸린다 세상을 제멋대로 물어뜯고 깨물다가 이젠 배추 잎에도 턱.. ♧...참한詩 2016.07.06
금동반가사유상/송찬호 금동반가사유상 송찬호 멀리서 보니 그것은 금빛이었다 골짜기 아래 내려가보니 조릿대 숲 사이에서 웬 금동 불상이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고 있었다 어느 절집에서 그냥 내다 버린 것 같았다 금칠은 죄다 벗겨지고 코와 입은 깨져 그 쾌변의 표정을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줄기 .. ♧...참한詩 2016.07.06
빨랫줄/서정춘 빨랫줄 서정춘 그것은,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줄 같다 그것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방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 아래 이쪽.. ♧...참한詩 2016.07.06
대숲소리/서하 대숲소리 서하 구름이 달을 옆구리 끼고 있는 송광사의 밤은 푸르기만 한데 화엄전 월조헌 뒤뜰 대숲이 애터지게 운다 대숲은 마디마다 바다를 들여놓았나 쓰러질 듯 일어서며 쏴아 쏴아 쏴아 뱉어내는 파도소리에 내 몸이 자꾸 뒤로 쏠린다 탁 풀어놓지 못하고 참았던 울음보따리들 오.. ♧...참한詩 2016.07.05
암자를 불사르다/이인주 암자를 불사르다 이인주 꽃대궁 뻗은 산길 벼랑을 탄다 안간힘으로도 잡히지 않는 수직, 천길 아래 흔들리는 뿌리 바위를 뚫어내린 곳 신흥사 계조암을 오른다 세상 모든 근원이 저토록 단단한 침잠이라면 한 잎 갈대에 기댄 내 등은 새삼 얕은 바람에도 어찌할 바 모른다 캄캄한 억겁 오.. ♧...참한詩 2016.06.29
야이새끼야/박윤배 야이새끼야 박윤배 중증 소아마비 걸음 불안한 아버지와 얼굴 꼭 빼닮은 다섯 살 아들이 냉천 둑에서 놀고 있다 카메라를 든 아버지는 연신 아들에게 둑 가까이는 못가게 한다 너 거기서 떨어지면 아무도 구해줄 수 없다고 가지말라고가지말라고 타이른다 가지마가지마 타일러도 다리 .. ♧...참한詩 2016.06.27
착시/변희수 착시 변희수 강물은 흘러간다 이것은 오해다 밀고 밀리면서 강물은 우왕좌왕 하고 있다 강물의 반짝임, 그거 오해다 강물은 등에 꽂힌 따가운 시선으로 떨고 있다 강물은 무작정 따라나선 낡은 스란치마의 추억, 헤진 금박을 물고 반짝거리고 있다 강물은 반짝거림들의 오래된 배후지만,.. ♧...참한詩 201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