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조재형 수화 조재형 황성공원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청각장애 지닌 부부 노점장사 꾸려가고 있다 손님 뜸할 때면 두 사람 쉬지 않고 수화로 대화 나눈다 손으로 그려지는 암호 같은 이야기 가끔 지나며 짐작하건대 계절 따라 메뉴를 바꾸면 수입이 좀 나아질까 혹은 늦게 낳아 키우는 아이 걱.. ♧...참한詩 2016.09.28
문병-남한강/박준 문병-남한강 박준 당신의 눈빛은 나를 잘 헐게 만든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해서 수면水面은 새의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된 물길들이 산허리를 베는 저녁 강 건너 마을에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댄다 미열을 앓는 당신의 머리맡에는 금방 앉았다 간다 하.. ♧...참한詩 2016.09.26
내 걸음이 벌레보다 더 느리다/임영석 내 걸음이 벌레보다 더 느리다 임영석 어린 살구나무를 심어 살구 하나가 열리기까지 3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도 벌레가 다 먹고 내 차지가 되지 않았다 살구 하나 내 것으로 만들려면 이제는 벌레들과 싸워야한다 나보다 벌레가 살구나무에 바짝 붙어사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냥 벌.. ♧...참한詩 2016.09.23
가장/정대구 가장 '을(乙)'의 비애 정대구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하루 종일 구겨진 얼굴을 그냥 달고 들어갈 수는 없지 말끔히 지우고 밝은 표정을 달고 들어가 마누라와 아이들의 기를 살리고 그들에 의해 다시 구겨지기 위해서라도 꿀꺽, 울음을 가장(假藏)한 가장(假裝)의 달인 우리들의 가장(家.. ♧...참한詩 2016.09.23
관음 외 3편/문소윤 觀音 문소윤 삐걱거리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는 한 번도 평화롭게 항복한 적이 없다 저항과 저항 사이를 꿰매는 수술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금 간 틈이 벌어졌을 때 나는 술을 마신다 질겅질겅 씹어서 마신다 그대여, 맛있게 또는 더럽게 라이타를 켜는 그대여 결국 그.. ♧...참한詩 2016.09.22
명함 유감/고희림 명함 유감 고희림 프레스에 눌려 납작하게 엎드린, 숫자와 문자들로 구워진 한 개인사는 당신의 그 물갈퀴 같은 손바닥을 타고 내게로 건너오기 전 당신의 가죽비린내 지갑 속에서 얼마나 흔들리고 터지고 싶었나요 당신이 허공으로 내다 걸 깃발 당신이라는 종이폭죽 말이에요 햇살 아.. ♧...참한詩 2016.08.30
칼날/장옥관 칼날 장옥관 칼날이 무뎌 햇빛에 비춰보니 주름살지듯 잡힌 자잘한 흠집투성이 무, 파만 써는 부엌칼인데 왜 날이 나가는 걸까 면도날 입에 넣고 씹는 깻잎머리 소녀처럼 배추, 당근이 우물우물 쇠 씹 는 취미 가진 건 아닐 텐데 흰 종이에 자주 손가락 베이는 나로선 칼이 풀을 베는 게 .. ♧...참한詩 2016.08.13
감천동/문인수 감천동 문인수 감천동 문화마을 골목길들은 참, 온통 애 터지게 좁아요. 그중에서도 거기 병목 같은 데 한토막은 어부바 어느 한쪽 벽에다 등을 데고 어느 한쪽 벽엔 가슴을 붙여 또 하루 비집고 들고 나야 그러니까 게걸음을 쳐야 그 어디로든 똑바로 향할 수가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큰.. ♧...참한詩 2016.08.13
지나가고 떠나가고/이태수 지나가고 떠나가고 이태수 지나간다. 바람이 지나가고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도 지나가고 또 한 해가 지나간다. 꿈 많던 시절이 지나가고 안 돌아올 것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물같이, 쏜살처럼, 떼 지어 지나간다. 떠나간다. 나뭇잎들이.. ♧...참한詩 2016.08.12
금방 낳은 달걀처럼 한 마음이 생기려 할 때 외 1편/ 변희수 금방 낳은 달걀처럼 한 마음이 생기려 할 때 변희수 흰자위에 동동 떠 있는 노른자 같은 마음아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흰자 같은 마음아 둘인 듯 하나인 듯 나누어지는 두 개의 마음이 마음을 품어 다시 한 마음이 생기려 할 때 무정한 마음이 다시 유정해지려 할 때 꼬꼬댁 꼬꼬댁 붐비.. ♧...참한詩 201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