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사윤수 코스모스 사윤수 코스모스가 살아온 방식은 한결같이 흔들렸다는 거다 이 바람결에 쏠리고 저 노을 쪽으로 기울며 제 반경을 끊임없이 넘어가던 그 범람이 코스모스의 모습 아니던가 가만히 서 있을 땐 속으로 흔들리는 꽃 몸이 그토록 가늘고 긴 것은 춤을 추라고 생겨난 것이다 가늘고.. ♧...참한詩 2016.11.14
역류/사윤수 역류 사윤수 입천장이 헐었다. 무얼 먹을 수 없는 정도여서 약을 바르고 하루를 굶었다. 그런데 배가 고파 도저히 안 되겠다. 농심 너구리가 먹고 싶었다. 뜨겁고 매운 라면을 헐은 입천장이 싫어할 텐데, 할 수 없다. 먹자. 이럴 때 먹고 죽을 값이라도 먹고 보자, 는 말을 쓰지. 너구리 아.. ♧...참한詩 2016.11.13
11월/엄원태 11월 엄원태 불현 듯 사방이 어두워졌다. 마음에 스위치 꺼지듯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주 깜박이는 추억에도 점멸장치가 있어 한동안 꺼놓았다가 필요할 때 켤 수 있으면 좋겠다. 만상이 그렇게 한순간에 늙어간다. 슬픔도 속살 메마르고 까칠해서, 부지불식간이다. 축생, 혹은 먼.. ♧...참한詩 2016.11.09
만금의 낭자한 발자국들/문인수 만금의 낭자한 발자국들 문인수 개펄을 걸어나오는 여자들의 동작이 몹시 지쳐 있다. 한 짐씩 조개를 캔 대신 아예 입을 모두 묻어버린 것일까, 말이 없다. 소형 트럭 두 대가 여자들과 여자들의 등짐을, 개펄의 가장 무거운 부위를 싣고 사라졌다. 트럭 두 대가 꽉꽉 채워 싣고 갔지만 뻘.. ♧...참한詩 2016.10.30
그랬으면 좋겠네/이시하 그랬으면 좋겠네 이시하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 ♧...참한詩 2016.10.13
가을 부근/정일근 가을 부근 정일근 ​ 여름내 열어놓은 뒤란 창문을 닫으려니 열린 창틀에 거미 한 마리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에게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호박잎이 무성한 뒤뜰 곁이 명당이었나 봅니다 아직 한낮의 햇살에 더위가 묻어나는 요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일이나, 새 집을 마련.. ♧...참한詩 2016.10.13
에세이/김용택 에세이 김용택 한 아이가 동전을 들고 가다가 넘어졌다. 그걸 보고 뒤에 가던 두 아이가 달려간다. 한 아이는 얼른 동전을 주워 아이에게 주고 한 아이는 넘어진 아이를 얼른 일으켜준다. 넘어진 아이가 울면서 돈을 받고 한 아이가 우는 아이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준다. “다친 데 없어?.. ♧...참한詩 2016.10.13
달의 수레를 끌고 간/장하빈 달의 수레를 끌고 간 장하빈 외양간 옆 감나무 가지에 달이 덩그라니 걸렸다 집나간 송아지 찾아오라고 휘영청, 등불 밝혀 놓은 거다 한밤중 텅빈 외양간에 달빛 주르르르 흘러들렀다 이 집에서 늙은 저 달, 쇠잔등 타고 놀던 그때가 몸 속에서 사무쳤던 것 달은 코뚜레 꿰인 소의 그렁그.. ♧...참한詩 2016.10.05
할머니와 아기염소/정성수 할머니와 아기염소 정성수 아기염소가 풀을 뜯는 사이 할머니는 그 옆에서 조알조알 졸고 있다 배가 부른 아기염소는 할머니가 깰까 봐 그 옆에서 다소곳이 엎드려 있다 염소 꼬리 같은 저녁 해가 서산으로 꼬리를 감춘다 아기염소가 그만 집에 가자고 매애~ 운다 할머니가 알았다고 하.. ♧...참한詩 2016.10.05
안개/함민복 안개 함민복 안개는 풍경을 지우며 풍경을 그린다 안개는 건물을 지워 건물이 없던 시절을 그려놓는다 안개는 나무를 지워 무심히 지나쳐 보지 못하던 나무를 그려보게 한다 안개는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나누어놓는다 안개는 사방 숨은 거미줄을 색출한다 부드러운 감.. ♧...참한詩 201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