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정호승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정호승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 ♧...참한詩 2017.04.25
길/김기림 길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젓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 ♧...참한詩 2017.04.07
오동나무는 한 그루 바다/사윤수 오동나무는 한 그루 바다 사윤수 오동나무를 심고 싶어 작은 섬에는 큰 나무가 못 자라니까 나무가 많이 없으니까 그 중에 오동나무가 맨 먼저 떠올랐어 섬에게 오동나무를 보여주고 싶어 한 번도 오동나무를 보지 못한 섬에게 오동꽃을 보여주고 싶어 오동꽃은 숭어리 숭어리 허공에서 .. ♧...참한詩 2017.03.29
언제는, 언제나 우리 앞을 지나가고/변희수 언제는, 언제나 우리 앞을 지나가고 변희수 잘 있었지, 잘 있었어 산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내려오는 사람이 올라가고 있는 사람과 나누는 인사 몸속에 쌓인 어혈을 풀어내듯 황엽이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남은 초록을 간신히 걸치고 서 있는 숲속에서 언제 밥 한번 먹자던 약속.. ♧...참한詩 2017.03.26
폐가에 와서 분홍을 태우다/변희수 폐가에 와서 분홍을 태우다 변희수 그날 당신은 내게 폐가 한 채 넘겨주고 떠났네 늑골 같은 담벼락에 삐딱하게 기대선 개복숭나무 한 그루 마지막 담밸 빨듯 붉은 꽃들을 뻑뻑 피워대고 있었지 아무 대문이나 불쑥 당신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한 모금씩 낡은 골목의 폐부로 스며드는 분.. ♧...참한詩 2017.03.25
은행나무 아래 지진/전인식 은행나무 아래 지진 ​ ​ 전인식 ​ 일부러 해가 지기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누가 먼저 가자고 한 적도 없었습니다 바람이 내어준 길을 따라 갔거나 고양이의 후각으로 비릿한 무엇인가의 냄새를 맡았거나 아니면 구름속.. ♧...참한詩 2017.03.21
굿모닝/문인수 굿모닝 문인수 어느날 저녁 퇴근해오는 아내더러 느닷없이 굿모닝! 그랬다. 아내가 웬 무식?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후 매일 저녁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 이제 아침이고 대낮이고 저녁이고 밤중이고 뭐고 수년째 굿모닝, 그런다. 한술 더 떠 아내의 생일에도 결혼기념일에도 .. ♧...참한詩 2017.03.17
呪文/ 오탁번 呪文 오탁번 소백산 아랫마을에서 萬物商을 하는 젊은 시인이 꿈 이야기를 했다. 깊은 가을 날 문득 찾아온 그를 데리고 산척면 손두부집에서 점심으로 비지찌개를 먹고 천등산 다릿재를 넘어 올 때였다 -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데 집이 온통 다 하얀 빛이 예요 지붕도 벽도 방도 .. ♧...참한詩 2017.03.09
외할머니의 숟가락/손택수 외할머니의 숟가락 손택수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팔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참한詩 2017.03.07
밥 먹자/하종오 밥 먹자 하종오 밥 먹자 이 방에 대고 저 방에 대고 아내가 소리치니 바깥에 어스름이 내렸다 밥 먹자 어머니도 그랬다 밥 먹자, 모든 하루는 끝났지만 밥 먹자, 모든 하루가 시작되었다 밥상에 올릴 배추 무 고추 정구지 남새밭에서 온종일 앉은 걸음으로 풀 매고 들어와서 마당에 대고 .. ♧...참한詩 2017.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