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박지웅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박지웅(1969~ )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 ♧...참한詩 2017.09.08
저녁눈/박용래 저녁눈 박용래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 ♧...참한詩 2017.09.03
락스 한 방울/이규리 락스 한 방울 이규리 꽃꽂이하는 사람이 말해주었다 꽃을 더 오래 보려면 꽃병에 락스 한 방울 떨어뜨리면 된다고......아무리 해도 그거 너무 폭력적이지 않나 싶으면서 그 말 왜 솔깃해지는지 머뭇거리다가 한 방울 꽃병에 떨어뜨렸다 거짓말처럼 뒷자리가 말끔해졌다 저러자면 누군가.. ♧...참한詩 2017.08.19
색/심강우 색色 ​ 심강우 사태가 났다 무너져 내린 단풍의 잔해로 욱수골 저수지 가는 길이 막혔다 붉은색이 엷어져 가는 세월이었다 당신과 나눈 말들이 몇 번 피고 졌는지 옹이로 갈라진 내 몸피를 보면 알 수 있을는지, 물의 냄새에는 여태 지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저장고의 시간은 묵은 .. ♧...참한詩 2017.08.17
언제나 진심이라고 우기는/변희수 언제나 진심이라고 우기는 변희수 코르셋을 꼭 껴입은 채 발목이 몽땅 잘린 꽃다발이 왔다 잔뜩 부풀려진 치마를 들추고 배배 꼬인 철사줄을 풀면 매캐한 폭죽냄새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성큼 지뢰를 밟고 갈 때 한 다발의 뇌관이 펑하고 터질 때 와, 하고 비명처럼 향기가 튀어오를 때 사.. ♧...참한詩 2017.08.15
하루/강문숙 하루 강문숙 하루가 참 짧다, 생각하다가도 돌이켜보면 꽤 길다 해 뜨고 해 지는 일 어디 만만한 순례길인가 꽃잎을 여느라, 모란은 한나절 얼마나 용을 써댔을 테고, 구름은 또 동에서 서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건넜을 것이었다 그대에게로 가는 길 손끝 닿을 듯 지척이다 싶다가도 아직 .. ♧...참한詩 2017.08.15
정물화처럼/이기철 정물화처럼 이기철 하늘의 파란색이 아니라면 슬프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맑은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작은 생각 끝에 등불을 다는 자꾸 만져지는 손끝의 백 년 제 가지에 작년의 목댕기를 매고 나온 새를 앉힌 살구나무가 혼자 살고 가끔은 하루만 묵고 가겠다는 구름도 함께 산다 몇 되.. ♧...참한詩 2017.08.05
한 수 배우다/문성해 한 수 배우다 문성해 매미가 아파트 방충망에 붙어 있다 내가 시 한 줄 건지지 못해 겹겹이 짜증을 부릴 때조차 매미는 무려 다섯 시간이나 갓 태어난 날개며 평생 입고 다닐 몸이며 울음이며를 말리우고 있다 내가 소리내어 울고 싶을 때조차 그저 조용히 울음을 견디고 있다 내가 안 나.. ♧...참한詩 2017.08.05
나의 방랑 생활/아르튀르 랭보 나의 방랑 생활 아르튀르 랭보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ㅡ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 ♧...참한詩 2017.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