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박용래/고은 어느 날 박용래 고은 술 먹은 박용래가 대전 유성온천 냇둑 술 먹은 고은에게 물었다 은이 자네는 저 냇물이 다 술이기 바라지? 공연스레 호방하지? 나는 안 그려 나는 저 냇물이 그냥 냇물이기를 바라고 술이 그냥 술이기를 바라네 고은이 킬킬 웃어대며 냇물에 돌 한 개를 던졌다 물은 .. ♧...참한詩 2017.07.29
滴-비꽃/김신용 滴-비꽃 김신용 물방울도 꽃을 피운다 비꽃이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쳤을 때, 문득 손등에 떨어졌을 때 거기 맺히는 물의 꽃잎들 무채색이지만, ‘비꽃’을 보는 눈은 탄성으로 물든다 그런 꽃이 있는지도 몰랐던, 발견에의 기쁨―. 비꽃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꽃 한 송이다 오늘, 이 .. ♧...참한詩 2017.07.14
시간/이기철 시간 이기철 색깔도 무게도 없는 것이 손도 발도 없는 것이 오늘을 만들고 내일을 만들고 영원을 만든다 봄풀을 밀어올리고 강물을 흐르게 하고 단풍을 갈아 입는다 누가 그 요람에 앉아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저 힘으로 -시집 '흰 꽃 만지는 시.. ♧...참한詩 2017.07.13
그때 흰나비가 돌아왔다/이기철 그때 흰나비가 돌아왔다 이기철 도라지꽃 곁에 쪼그려 앉아 '너도 대구에 가고 싶니' 물으면 도라지꽃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창문을 달면 비둘기가 올 거라 믿었다 물새 발자국을 따라가다 되돌아온 오후엔 맨발로 산그늘에 앉아 동화를 읽었다 학교에서 배운 말들은 한 마디도 읽지 않고.. ♧...참한詩 2017.07.02
오전의 기분/이기철 오전의 기분 이기철 사각사각 사과를 깎는 기분 하얀 실파를 뽑는 기분 놀러 간 고양이를 부르고 싶은 기분 너의 속옷 속에 마른 손을 넣는 느낌 부드러운 무언가가 만져지는 느낌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느낌 채송화를 우두둑 따 버리고 싶은 느낌 또 무슨 말이 있나? 저 가시나무.. ♧...참한詩 2017.07.02
애잔/이기철 애잔 이기철 달 빛 아래 벌레 한 마리 잠들었다 먹던 나뭇잎 반 장 내일 먹으려 남겨 두고 달빛 이불 덮었다 저 눈부신 애잔 ㅡ시집 <흰 꽃이 머무는 시간> (민음사 2017)ㅡ ♧...참한詩 2017.06.28
일몰/장하빈 일몰 장하빈 파동이 발 아래 쌔근거리는 애기용지봉 올라서 오늘도 그대를 서역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무등 타고 가듯 비슬산 너머 뉘엿뉘엿 사라지고 사방천지는 다갈색으로 번져갔습니다 산길 따라온 굴참나무는 달빛 무명옷 갈아입고 풀벌레 울음소리 자욱하게 쏟아냅니다 밥상바위.. ♧...참한詩 2017.06.28
노령에 눕다/이기철 노령*에 눕다 이기철 여기 와 미루었던 답신을 쓰네 아무에게도 애린 보내지 않고 살리라 했던 마음 실꾸리처럼 풀려 잡은 펜 자꾸만 홍역을 앓네 잠자리 마른 발이 밟고 간 하늘을 바라며 자꾸 빗금 진 자네 눈썹을 떠올리네 말을 갖지 않은 뫼꽃들은 나를 보고 어서 시집가고 싶다고 말.. ♧...참한詩 2017.05.24
너는 가고 남은 한 장의 백지/문덕수 너는 가고 남은 한 장의 백지 문덕수 너는 가고 남은 한 장의 백지 절벽 끝에 붙은 낙엽 같구나 실은 너마저 삼켜버렸을지 모를 백지 위에 또박또박 戀文연문을 써보나 파란 빨간 글씨를 수놓듯 써보나 모든 꽃의 몸짓을 하나하나 새기듯 써보나 모두 지워버리는 深淵심연이여 아, 마침내 .. ♧...참한詩 2017.05.05
명료한 열한 시/류인서 명료한 열한 시 류인서 아홉시에서 열한시 사이, 석가가 거리로 나가 밥을 빌었다는 시간 그 시간 당신도 거리에 있고 끼니를 구걸 중에 있다 당신의 법(法)도 어쩌면 많은 집에서 많은 밥을 얻는 것일지 모른다 당신은 매일 수많은 집에서 수많은 문을 두드리며 이곳에 온다 이곳에는 관.. ♧...참한詩 2017.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