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이기철 까뮈 이기철 그대가 노벨 문학상을 받던 해 나는 한국의 경상도의 시골의 고등학생이었다. 안톤 슈낙을 좋아하던 갓 돋은 미나리 잎 같은 소년이었다. 알베르 까뮈, 그대의 이름은 한 줄의 시였고 그치지 않는 소나타의 음역(音域)이었다 그대 이름을 부르면 푸른 보리밭이 동풍에 일렁였.. ♧...참한詩 2017.01.12
사글세, 사 글세/전하라 사글세, 사 글세 전하라 집에 들어가는 길목 언저리 할머니 한 분 쑥 한 움큼, 미나리 한 움큼, 달래 조금 사, 글세 더 준다니께 오늘은 두 번이나 어긴 사글세 내는 날 이리저리 억지로 아귀를 마친 나는 주인의 억지가 너무 쟁쟁해 사라고 발목을 잡는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 ♧...참한詩 2017.01.06
나무/문근영 나무 문근영 땔감도 되고 팽이도 되고 빨랫방망이도 되고 대들보도 되고 배도 되고 썩은 후엔 거름이 되는 나무 그런 나무도 흑심을 품는구나 연필이 되기 위해서 (2017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참한詩 2017.01.05
나, 덤으로/황인숙 시인 시편 모음 나, 덤으로 / 황인숙 나,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 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 자꾸 기다리네 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다니고 아, 나.. ♧...참한詩 2017.01.02
물새 발자옥/이기철 물새 발자옥* 이기철 발자국도 발자죽도 발자욱도 아니다 발자옥이다 자박자박 소리 들리지 않느냐 사륵사륵 모래톱 무너지는 소리 새어나오지 않느냐 바스락바스락 마른 잎 딛고 가는 물새 발가락 보이지 않느냐 손바닥 우에 올려놓고 싶은 또록또록 굴리는 눈망울 마주보고 싶은 올해.. ♧...참한詩 2017.01.01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외 2편)/김행숙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외 2편) 김행숙 신발장의 모든 구두를 꺼내 등잔처럼 강물에 띄우겠습니다 물에 젖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진 구두를 위해 슬피 울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발이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국가도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그 곁에서 .. ♧...참한詩 2016.12.03
손전등/문인수 손전등 문인수 밤중에, 이 악산 아래 오랜 세월 주저앉아가는 폐가 한 채를 둘러본다. 손전등 불빛이 더듬는 방 두 칸, 부엌 한 칸, 그리고 거기 널린 잡동사니 부장품들. 목장갑 뭉텅이며 몽당빗자루며 양은냄비 같은 것들이 무슨 자존심이나 수치심이라도 건들린 것인지 깜깜하게 돌아.. ♧...참한詩 2016.12.03
저녁의 문장 외 1편/송종규 저녁의 문장 송종규 당신이 없는 두 번째 저녁이 지나가고 있다 구겨지고 휘어지고 용솟음치는 날짜들 저녁의 문장에는 언제나 당신의 입술이 묻어 있다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전에, 사무친다고 말하기도 전에 전선(戰線)처럼 들이닥치는 거대한 안개의 대열들 도대체 우리 사이에 강물.. ♧...참한詩 2016.12.01
서울로 가는 전봉준/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눈 내리는 만경(萬頃)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 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 ♧...참한詩 2016.11.25
단풍/박숙이 단풍 박숙이 그가 물었다 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오랜 고심 끝에 나는 대답했다 마음에 담아본 적이 없다고 그랬더니, 며칠 만에 쓸쓸히 찾아온 그 짐승처럼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쨌든 속수무책으로 서로의 본능을 다 태웠다 아 나의 저항이 오히려 .. ♧...참한詩 2016.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