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한상권 낙관 한상권 주산지에서 풍경화를 그리다가 왕버들나무처럼 온몸이 젖어 있다가 야송미술관 옆 넓은 밥집 마당으로 옮겼다. 송소고택의 헛담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단풍과 단풍 사이를 붉게 거닐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진 창가에 앉아 점심을 먹는 것인데 갑자기 작은 새 한 마리가 .. ♧...참한詩 2017.11.07
무지개/이진흥 무지개 이진흥 비 개인 하늘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휘인 허리가 숨 막히게 하는 젖은 눈길로 가슴 찌르는 아름다운 사람 햇살을 마주하여 날씬한 몸매로 출몰하는 고개 돌려 거부할 수 없는 다가서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당신은 누구인가 ♧...참한詩 2017.11.03
발가락에 대하여/박언숙 발가락에 대하여 박언숙 보도블록 위를 알짱거리는 비둘기 발가락을 무심코 본 후로 종종 걸음 멈추고 안쓰럽게 세는 버릇 발가락 하나가 잘리고 없는 놈 그나마 둘 달린 놈 드물지만 한 쪽 발가락을 다 잘리고 뒤뚱거려서 애가 쓰이는 녀석도 보인다 배고픈 날 서대구공단 야적장을 뒤.. ♧...참한詩 2017.11.01
오지 않는 꿈/박정만 오지 않는 꿈 박정만 초롱의 불빛도 제풀에 잦아들고 어둠이 처마 밑에 제물로 깃을 치는 밤, 머언 산 뻐꾹새 울음 속을 달려와 누군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문을 열고 내어다보면 천지는 아득한 흰 눈발로 가리워지고 보이는 건 흰눈이 흰눈으로 소리없이 오는 소리 뿐 한 마장 .. ♧...참한詩 2017.10.29
절절/사윤수 절절 사윤수 대비사 돌확에 약수가 얼었다 파란 바가지 하나 엎어져 약수와 꽝꽝 얼어붙었다 북풍이 밤 세워 예불 드릴 때 물과 바가지는 서로를 파고들었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꽉 잡고 놓지 않았겠지 엎어져 붙었다는 건 오지 말아야할 길을 왔다는 뜻, 그러나 부.. ♧...참한詩 2017.10.29
10월/문인수 10월 문인수 호박 눌러 앉았던 따 낸 자리 가을의 한 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몸살이 왔다가 갔다. 허전하다. 아직 덜 아플 때는 마음만 이렇게 아플 새가 없다고 저 혼자 바쁘더니, 한 고비 지날 때는 아무 생각 없었다. 그리고 갔다. 성취의 기쁨도 왔다 가고, 비.. ♧...참한詩 2017.10.19
친정 엄마/고혜정 친정 엄마 고혜정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언제나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 자주 못 보여줘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 ♧...참한詩 2017.10.07
눈 속에 사막/문인수 눈 속에 사막 문인수 눈에, 두어 알 모래가 든 것 같다. 안구건조증이다. 이럴 땐 인공누액을 한 두 방울 ‘점안’하면 한결 낫다. 이건… 마음의 사막이 몰래 알 슬어 공연히 불러들인 눈물이다.하긴, 사람의 눈물은 모두 사람이 만드는 것. 그 눈물 퍼 올려 너에게로 가야하는 메마른 과.. ♧...참한詩 2017.10.01
두레반/오탁번 두레반 오탁번 잣눈이 내린 겨울 아침, 쌀을 안치려고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는 불을 지피기 전에 꼭 부지깽이로 아궁이 이맛돌을 톡톡 때린다 그러면 다스운 아궁이 속에서 단잠을 잔 생쥐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살강 위로 달아난다 배고픈 까치들이 감나무 가지에 앉아 까치밥을 쪼아 .. ♧...참한詩 2017.09.29
오다, 서럽더라 외 2편/이성복 오다, 서럽더라 1 이성복 그날 밤 동산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헐떡거리던 청년의 내려진 팬티에서 검은 고추, 물건, 성기! 이십 분쯤 지나서 그는 숨을 거뒀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오늘 밤에도 그의 검은 고추는 아직 내 생 속을 후벼 판다 못다 찌른 하늘과 지독히 매운 .. ♧...참한詩 201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