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명상/김이랑(본명 김동수) 길 위의 명상 김이랑(본명 김동수) 길 끝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없다고 벼랑은 단호하게 깎아지르나 위로는 날개 달린 자의 길이요, 아래로는 지느러미를 가진 자의 길이다. 잡다한 생각을 잠시 비우려 길을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길 위에서 길을 생각한다. 길은 움집에서 움이 텄다... ♧...참한詩 2016.06.05
국물/신달자 국물 신달자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 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 ♧...참한詩 2016.06.02
무릎을 읽어버리다/엄원태 무릎을 잃어버리다 엄원태 한동안 무릎은 시큰거리고 아파서, 내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아침산에 몇달 만에 아프지 않게 되자 쉽게 잊혀졌다 어머니는 모시고 사는 우리 부부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하시다. 때로는 잘 삐치시고 짜증까지 내신다. 어머니 보시기에 우리가 아.. ♧...참한詩 2016.05.15
거짓말/신미균 거짓말 신미균 간단히 입고 벗을 수 있다 일상적인 일을 하거나 조깅 에어로빅을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입고만 있어도 땀이 난다 가볍고 튼튼하다 모자가 달려 있어 여차하면 떼어서 남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 우주인의 멋과 색깔도 느낄 수 있다 한번 입기 시작하면 계속 입고 싶어진.. ♧...참한詩 2016.05.15
물을 끓이며/홍정숙 물을 끓이며 홍정숙 장난을 치다가 열을 받았다 씨-씨- 노려보며 씩씩거린다 장난이 말다툼으로 번져 중얼중얼 물의 말로 욕을 한다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끓어 넘친다 목청을 찢으며 뚜껑이 열린다 홍정숙 시집《허공에 발 벗고 사는 새처럼》에 실린 시 [0] ♧...참한詩 2016.05.10
누구나 아는 말/류경무 누구나 아는 말 류경무 그 말에는 그 말의 냄새가 나지 오래 묵은 젓갈같이 새그러운 그것은 구걸의 한 양식 그것은 마치 몹시 배가 고플 때 내가 나에게 속삭이는 말과 비슷해서 그 말은 냄새의 한 장르이기도 한데 여름날 내가 바닷가에 누웠을 때 햇빛이 내게 오는 것과 비슷한 일이거.. ♧...참한詩 2016.05.09
분홍 나막신/송찬호 분홍 나막신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 ♧...참한詩 2016.04.26
아침의 노래/변희수 아침의 노래 변희수 커튼콜처럼, 다시 무대가 열리고 있네, 검은 휘장 속에서 네가 걸어 나오고 있네 온갖으로 오고 있네, 온갖이라는 말이 폭죽처럼 쏟아져 내리네 많고 많은 온갖, 온갖은 사방팔방에서 오네, 온갖은 붉게붉게 물들면서 오네 온갖이 지문처럼 스미네, 번지네, 눈동자마.. ♧...참한詩 2016.04.22
대담한 치마 외 1편/변희수 대담한 치마 변희수 우리 할머니 잘하던 말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프다는 말 눈에 자꾸 밟힌다는 말 비유의 치마폭이 장난이 아니다 비유치고는 참 대담한 비유다 그 덕에 내가 지금 시를 쓰는지도 모르지만 스케일로 따지면 나는 겨우 미니스커트 한 장 정도 눈에 사람을 넣는다는 생.. ♧...참한詩 2016.04.20
바람에게/살짝이 흔들리고 싶은 마음/장시우 바람에게/살짝이 흔들리고 싶은 마음 장시우 바람아 바람아 앉아라 꽃대 물은 가지가 살짝이 흔들릴 만큼만 살짝 휘어질 만큼 그만큼 만 그리도 그리우면 피어나는 꽃길같이 앉아라 산 모롱이 돌아가면 외로운 언덕배기 멧새처럼 내 앞에 요만치 만 날아가다 앉고 저만치 만 날아 살포시.. ♧...참한詩 201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