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금이 절창이다/문인수 만금이 절창이다 문인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 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 넣는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 ♧...참한詩 2016.06.24
저녁 뉴스 외 4편/박주택 저녁뉴스 박주택 그는 말할 것이다.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을 하고 지각에 심장을 태우다가 그는 말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점심의 부드러운 야채에 감정을 풀고 괜찮다. 더욱더 많은 밥풀들이 일어선다. 그는 굳은 어조를 풀고 책상 위의 책을 정리한다. 저 진지한 표정의 축조물. 非詩.. ♧...참한詩 2016.06.22
모기는 없다/김기택 모기는 없다 김기택 내 손이 갑자기 내 뺨을 매몰차게 때린 것은 손바닥과 뺨 사이에 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뺨따귀를 얼얼하게 맞고 나서야 모기가 없다는 걸 알았다. 모기 소리가 들리자마자 피가 다 가렵다. 핏줄을 긁으니 살갗이 벌겋게 부어오른다. 뇌 한가운데를 가는 철사 핏줄.. ♧...참한詩 2016.06.19
봄날은 간다/김용택 봄날은 간다 김용택 진달래 염병헌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낮에 낮잠을 자다니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찔레꽃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을 잡아.. ♧...참한詩 2016.06.19
구름의 전지/김신용 구름의 전지 김신용 비는, 구름의 전지剪枝 구름 스스로 가지치기한 구름의 가지들 저것 봐, 미꾸라지가 빗줄기를 타고 공중을 기어오르고 있네 비의 가지에 맺혀 있는 꽃눈 같네 빗방울의 앙증맞은 귓불 같기도 하네 누가 꽂아 주었을까, 비의 잘린 가지들을 한 움큼 땅의 꽃병에. 하지.. ♧...참한詩 2016.06.19
뜨거운 돌/나희덕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이 있네 그러면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 ♧...참한詩 2016.06.19
(시집)누가 저 황홀을 굴리는가/김완수 가출 집을 버리고 보니 모두가 집이다 어머니 몸에서 버림을 받았을 때 알았어야 했다 햇살 아래 철둑길을 따라 걷는다 철로에 귀를 대면 아득히 들려오는 철바퀴 소리 마음에 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비우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티끌이 나를 스치고 간다 우주의 끝자락도 이제 막 나를 스.. ♧...참한詩 2016.06.18
시멘트/강해림 시멘트 강해림 좌익도 우익도 아닌 것이 돌처럼 서서히 굳어간다 침묵이 더 큰 침묵으로 덮어버리고 견딘다 이 숨쉬기조차 끊어버린, 내 안의 무수한 내가 반죽되고 결합작용을 하느라 벌이는 사투를, 불화의 힘으로 고립된다 외롭지 않다 가슴에 철로 된 뼈를 박고 나는 꿈꾼다 불임의 .. ♧...참한詩 2016.06.12
여름 신림동/이규리 여름 신림동 이규리 다섯 평을 견디는 낮과 밤들아 너무 애쓰지 마 우리는 잊혀질 테니 식당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한 방향으로 앉아 꿈을 버렸느냐 그런 건 묻지 않는다 골목마다 반바지와 슬리퍼가 나오고 저 발들이 길을 기억하게 될는지 비참하지 않기 위해 서로 말을 걸지 않는데.. ♧...참한詩 2016.06.12
늙은 소/정래교 늙은 소 정래교 밭에서 죽어라고 일을 한 뒤에 나무에 묶인 채로 외롭게 우네 소의 말 아는 사람 어디 좀 없나 저 슬픈 울음소리 통역 좀 해봐 ♧...참한詩 201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