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정희성 꽃샘 정희성 봄이 봄다워지기까지 언제고 한번은 이렇게 몸살을 하는가보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꽃을 피울까마는 어디서 남몰래 꽃이 피고 있기에 뼈마디가 이렇게 저린 것이냐 ♧...참한詩 2016.03.07
깃/장하빈 깃 장하빈 깃 달린 작은 돌멩이 꿈꾸었네 냇가로 강가로 헤적이며 나댕겼다네 어느 날 문득 찾아간 격포 바닷가 묵은 서책 켜켜이 쌓인 채석강 따라 빗속을 거닐 땐 단애에 펼쳐진 우산이 나의 깃이었네 우산 위로 튕겨 오르는 빗방울이 나의 깃이었네 저녁나절에 비가 눈으로 둔갑하고 .. ♧...참한詩 2016.02.19
마감/박윤배 마감 박 윤 배 풀들 , 잿빛으로 돌아가는 땅 위로 눈이되지 못한 겨울비 내린다 국숫집 처마 아래 서서 마감해야 할 사랑에 뻑뻑 담배 피워물지만 옛날식 칼국수가 맛있다고 어서 들어오라고 늙은 할매는 눈짓한다 우산도 없이 걸어온 생이었으니 푹푹 삭을 일만 남았다고 풀들은 납작 엎.. ♧...참한詩 2015.12.21
무허가/송경동 무허가 송경동 용산4가 철거민 참사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 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텐트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불응.. ♧...참한詩 2015.12.15
중과부적/김사인 중과부적 衆寡不敵 김사인 조카 학비 몇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 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하신다. 다시 자동차세와 통신요금 내고 은행카드 대출할부금 막고 있.. ♧...참한詩 2015.12.11
날벌레를 먹다/정일근 날벌레를 먹다 정일근 이른 출근길 팥빵 하나로 얼요기 한다 날아온 작은 날벌레 한 마리 겸상이다 저도 갈 길 바쁜 것 같아 쫓지 않고 함께 먹는다 다 먹고 나니 그 벌레 보이지 않는다 아뿔싸! 나의 식탐이 벌레까지 다 먹었구나 내 뱃속에 너의 지옥이 있었구나 내가 걸어 다니는 아귀 .. ♧...참한詩 2015.12.09
달빛 한 그릇/우영규 달빛 한 그릇 우영규 갓바위 오르는 길 암벽 사이 작은 불상 앞에 누가 갖다 놓았는지 밥 한 그릇 올려져 있다 덩그렇다, 피어오르는 김은 지극한 소원이다 제단에 오른 정성은 희다 못해 푸르다 너부죽한 달이 떠오르자 푸르게 닳은 소원 한 그릇은 한 덩이 달 품은 섬이다 세상의 어머니.. ♧...참한詩 2015.12.05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원구식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 원구식(1955~ ) 오늘밤도 혁명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을 뒤집는다. 돼지기름이 튀고, 김치가 익어가고 소주가 한 순배 돌면 불콰한 얼굴들이 돼지처럼 꿰엑꿰엑 울분을 토한다. 삼겹살의 맛은 희한하게도 뒤집는 데 있다. 정반합이 삼겹으.. ♧...참한詩 2015.12.03
두엄, 화엄/반칠환 두엄, 화엄 반칠환 모든 꽃은 제 가슴을 찢고 나와 핀다 꽃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절벽이다 온 산에 참꽃 핀다 여리디여린 두엄 잎이 참 달다 출렁, 저 황홀한 꽃 쿠린내 모든 존재가 아름다운 건 꽃잎의 날보다 두엄의 날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 반칠환 / 1964년 충북 청주 출.. ♧...참한詩 2015.11.30
얼음의 죽음/마경덕 얼음의 죽음 마경덕 노점상 여자가 와르르 얼음포대를 쏟는다 갈치 고등어 상자에 수북한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아가미가 싱싱한 얼음들, 하지만 파장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얼음의 몸, 한낮의 열기에 조금씩 각이 뭉툭해진다 질척해진 물의 눈동자들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땡볕.. ♧...참한詩 201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