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빛에 대하여/고은 겨울햇빛에 대하여 고은(1933∼) 겨울햇빛 너는 흙 속의 씨앗들을 괜히 깨우지 않는다 가만가만 그 씨앗들이 잠든 지붕을 쓰다듬고 간다 이 세상에서 옳다는 것은 그것뿐 겨울햇빛 너는 지상의 허튼 나뭇가지들의 고귀한 인내를 밤새워 달랠 줄도 모르고 조금 어루만지고 간다 이 세상에.. ♧...참한詩 2015.06.10
공일/임경빈 공일 임강빈(1931∼ ) 백목련 자리가 너무 허전하다 누가 찾아올 것 같아 자꾸 밖을 내다본다 우편함에는 공과금 고지서 혼자 누워 있다 이런 날엔 전화벨도 없다 한 점 구름 없이 하늘마저 비어 있다 답답한 이런 날이 또 있으랴 마당 한 구석에 노란 민들레 반갑다고 연신 아는 체한다 그.. ♧...참한詩 2015.06.10
쫄딱/이상국 쫄딱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순식간에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 ♧...참한詩 2015.06.10
박사로 가는 길/류근 박사로 가는 길 류 근 교수가 될 어림도 미래도 없으면서 학교라도 안 가면 술집 귀신이나 될 터인데 싶어 또 비틀비틀 박사 들으러 간다 강의실에 앉으면 비로소 숙취가 좀 헹궈지는 것이 타고 난 박사 체질인가 싶어 싱겁다가도 남 몰래 창 밖 구름과 잎사귀나 훔쳐보고 있는 퇴행을 보.. ♧...참한詩 2015.05.06
반성/류근 반성 류근 하늘이 함부로 죽지 않는 것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별들이 제 품 안에 꽃피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조차 제 품 안에서 평화롭기 때문이다 보아라, 하늘조차 제가 낳은 것들을 위해 늙은 목숨 끊지 못하고 고달픈 생애를 이어간다 하늘에게서 배우자 하늘이라고 왜 아프고 서러운.. ♧...참한詩 2015.05.04
[스크랩] 칼날 / 장옥관 칼날 장옥관 칼날이 무뎌 햇빛에 비춰보니 주름살지듯 잡힌 자잘한 흠집투성이 무, 파만 써는 부엌칼인데 왜 날이 나가는 걸까 면도날 입에 넣고 씹는 깻잎머리 소녀처럼 배추, 당근이 우물우물 쇠 씹는 취미 가진 건 아닐 텐데 흰 종이에 자주 손가락 베이는 나로선 칼이 풀을 베는 게 아.. ♧...참한詩 2015.04.07
춤/장옥관 춤 장옥관 흰 비닐봉지 하나 담벼락에 달라붙어 춤을 추고 있다 죽었는가 하면 살아나고 떠올랐는가 싶으면 가라앉는다 사람에게서 떨어져나온 그림자가 따로 춤추는 것 같다 제 그림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것이 지금 춤추고 있다 죽도록 얻어맞고 엎어져 있다가 히히 고개 드는 .. ♧...참한詩 2015.03.18
[스크랩] 무당개구리의 경우/ 복효근 무당개구리의 경우 복효근 봄처럼이나 따뜻한 햇살에 무당개구리들 나와서 운다 운다는 것은 실은 오해다 짝을 찾는 구혼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밤새 찾아온 독한 꽃샘추위에 수십 마리가 얼어 죽었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탓할 것인가 짝짓겠다고 죽음을 불사한 철모르는 중생의 무명을 .. ♧...참한詩 2015.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