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 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 ♧...참한詩 2014.10.11
각축/문인수 각축 문인수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 ♧...참한詩 2014.10.03
[스크랩] 녹슨 도끼의 시 (외 2편)/ 손택수 녹슨 도끼의 시 (외 2편) 손택수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 이 흐리멍텅이 어쩐지 쓸쓸하다 가만히 정지해 있다 단숨에 급소를 낚아채는 매부리처럼 불타는 쇠번개 소리 짝, 허공을 두 쪽으로 가르면 갓 뜬 회처럼 파들파들 긴장을 하던.. ♧...참한詩 2014.09.19
잘 버려진 소파/정병근 잘 버려진 소파 정병근 목 없는 부처처럼 들판에 소파가 앉아 있다 참 잘 버려놓았다 그를 앉았던 목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소파는 버려져야 소파지 목이 없어야 버려졌다고 할 수 있지 소파는 그리 볼 것 없다는 자세로 비를 맞고 볕을 쬐고 밤을 새면서 사람의 은유를 지우고 있다 한 백.. ♧...참한詩 2014.09.18
스며드는 것/안도현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 ♧...참한詩 2014.09.17
[스크랩] 양파 공동체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당선작)/ 손 미 양파공동체 손 미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 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 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햇다. 도착.. ♧...참한詩 2014.09.11
[스크랩] 지렁이들/ 이경림 지렁이들 이경림 가을비 잠깐 다녀가신 뒤 물기 질척한 보도블록에 지렁이 두 분 뒹굴고 계십니다 한 분이 천천히 몸을 틀어 S? 물으십니다 그러니까 다른 한 분, 천천히 하반신을 구부려 L…… 하십니다. 그렇게 천천히 U? 하시면 C…… 하시고 J? 하시면, O…… 하시고 쬐한 가을 햇살에 붉.. ♧...참한詩 2014.09.11
추석 전날 밤/김남극 추석 전날 밤 김남극 달은 꽃사과에 내려앉아 그 빛으로 발을 씻겠다 달은 마가목 열매에 대롱대롱 걸려 바람결에 쓰닥이겠다 달은 비닐하우스에 내려앉다 밀커덩 궁둥이가 까지며 미끄러지겠다 달은 달아빠진 떡함지 귀퉁이에 앉았다가 들기름 빛에 흩어지겠다 흩어져 지시랑물 얕은 .. ♧...참한詩 2014.09.06
추석 무렵/맹문재 추석 무렵 맹문재 흙냄새 나는 사람들의 사투리가 열무맛처럼 담박했다 잘 익은 호박 빛깔을 내었고 벼 냄새처럼 새뜻했다 우시장에 모인 아버지들의 텁텁한 안부 인사 같았고 떡집 아주머니의 손길 같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편안한 나의 사투리에도 혁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호치.. ♧...참한詩 2014.09.06
술도가가 있는 골목/문성해 술도가가 있는 골목 문성해 산사춘 복분자 오가피주 백세주 매실주는 물론이거니와 막걸리 한 병을 마시다가도 그 병을 들어 만든 곳을 확인하는 일 그때마다 나는 경상북도 문경의 어느 오래된 술도가 골목을 더듬더듬 헤매지도 않고 흘러들어가게 된다 산사나무 열매나 복분자 오가피 .. ♧...참한詩 201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