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가 팰 때쯤/변희수 보리가 팰 때쯤 변희수 내가 태어난 날을 물어보면 인디언족처럼 엄마는 보리가 팰 때쯤이라고 한다 보리가 팰 때쯤이란 말은 참 애매하다 보리의 배가 점점 불러올 때나 보리의 수염이 까끌하게 자랄 때로 들린다 그때 그 보리밭에서 ……. 이런 우스운 생각을 하다보면 보리가 떨군 씨.. ♧...참한詩 2016.04.09
일꾼/조예린 일꾼 조예린 삯꾼은 삯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일꾼은 일을 보고 기뻐한다 일꾼이여, 수고하라 무겁게 짐 지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올 것이다! ♧...참한詩 2016.04.09
겨드랑이가 따뜻하다/이경 겨드랑이가 따뜻하다 이경 어떤 책은 손에 들고 읽다 보면 옆구리에 끼고 싶다 끼고 있으면 겨드랑이가 따뜻하다 조금 오래 있으면 병아리도 나올 것 같다 그는 오늘 아침 출석부를 겨드랑이에 끼고 들판으로 갔으까 그가 호명하면 손을 치켜들고 한들한들* 저요! 저요! 대답하는 풀꽃들.. ♧...참한詩 2016.04.09
고양이 찾기/윤범모 고양이 찾기 윤범모 제 직업은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것 한마디로 고양이 탐정이지요 세상에 그런 직업도 다 있느냐고 묻겠지만 자, 가출한 고양이를 찾아볼까요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막한 시간 거기다 깜깜한 밤이면 더 좋겠네요 그렇다고 멀리 갈 것도 없어요 우선 집안의 .. ♧...참한詩 2016.04.09
진달래 외 1편/이진흥 진달래 이 진 흥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온 몸 구석구석 오들오들 그리움이 피었습니다 가슴 속 관류하는 고통의 핏줄 바위틈에 숨겨진 화려한 절망들이 봄바람에 터져서 피었습니다 향기로운 당신 말씀 가혹하여 함부로 찢어져서 빠알갛게 온 산에 철철철 피었습니다 어떤 사건 이 진 .. ♧...참한詩 2016.04.09
소사 가는 길, 잠시/신용목 소사 가는 길, 잠시 신용목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 ♧...참한詩 2016.03.31
귀가/김사인 귀가 김사인 자동차 광음 속 도시고속도로 갓길을 누런 개 한 마리가 끝없이 따라가고 있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말린 꼬리 밑으로 비치는 그의 붉은 항문 ♧...참한詩 2016.03.31
돌에 대하여/이기철 돌에 대하여 이기철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 ♧...참한詩 2016.03.22
깡통의 세계/변희수 깡통의 세계 변희수 깡통은 내용을 다 쏟아버렸다 내용이 깡통을 멀리 던져버렸다 서로 상반된 이 두 문장은 간단하게 버렸다로 압축된다 구겨진다 찌그러진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사라지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내용이 사라진, 이 지점에서부터 내용이라는 말을 만끽할 수 있다고 대낮부.. ♧...참한詩 2016.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