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박정원 고드름 박정원 예리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는 오기였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밤마다 처마 밑에서 울던 회초리였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날카로운 송곳이었다 냉혹하게 자신을 다스릴수록 단단해지던 회한이었다 언제 떨어질까 위태롭다고들 했.. ♧...참한詩 2010.10.12
깊이에 대하여/이하석 깊이에 대하여 이하석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 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 고 묻는 이 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하여" 라 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 일수 있다. 인스 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 으면, 대.. ♧...참한詩 2010.10.09
지상의 방 한 칸/김사인 지상의 방 한 칸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 ♧...참한詩 2010.10.08
피부의 깊이/나희덕 피부의 깊이 나희덕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너는 확신에 찬 꿈을 꾸면서 어디 먼 곳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네 눈과 뺨과 팔과 다리를 쓸어내리니 손 끝을 파고드는 냉기가 싸늘한 돌멩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 피부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네 삶을 봉인한 자루 속에서 다른 세계의 빙산이 떠.. ♧...참한詩 2010.10.01
나팔꽃/송수권 나팔꽃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 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 ♧...참한詩 2010.10.01
가을 저녁의 말/장석남 가을 저녁의 말/장석남 나뭇잎은 물든다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군불 때며 돌아보니 제 집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꾸물대는 닭들 윽박질린 달이여 달이 떠서 어느 집을 쳐부수는 것을 보았다 주소를 적어 접시에 담아 선반에 올려놓고 불을 때고 등을 지지고 배를 지지고 걸게 혼잣말하며 어둠을.. ♧...참한詩 2010.09.28
평생/송재학 平生 송재학 월하리 은행나무가 이렇게 늙어도 매년 열매를 열 수 있었던 까닭을 노인은 개울이 그 은행나무 근처 흘렀던 탓이라고 전해주었다 개울의 수면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와 맺어졌다는 이 고목의 동성애와 다름없는 한 평생이 은행의 다육성 악취와 함께 울컥 내 인후부에 머문 어느 하루! 누.. ♧...참한詩 2010.09.20
한가위엔 연어가 된다/이승복 한가위엔 연어가 된다 이승복 즐겁고 배려하는 추석 되시기를 백여폭 병풍으로 산들이 둘러리 서고 꽹과리 장구의 신명난 굿패 장단에 웃음꽃 피우며 손들을 잡았다 한가위 만월을 감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일상 등짐을 벗고서 놀았던 춤사위, 신명난 어깨춤으로 더덩실 춤을 춘다. 고향이 타향이 된 .. ♧...참한詩 2010.09.20
새만금방조제 새만금방조제 부안-군산 간 갈라놓은 바닷길 물위에 떠있는 만리장성 같다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든 길이 파도를 탄다 휜 허리 쭉 펴고 넘실넘실 달리는 백삼십 리 길 발 동동 구르다 곧추서면 홀로 저 밑둥 돌부리께 가 닿을까 행여, 투기꾼 냄새라도 풍기면 어쩌나 갯벌에 살던 참소라라고 그럴까 아.. ♧...발표작 2010.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