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 / 박미란 파꽃 박미란 내 마음 부서진 문짝이었을 때 실뿌리처럼 구석구석 너는 파고들었다 매운 성질을 달래며 우리 한판 뜨겁게 어울려보자 얼굴은 보이지 말고 두 손의 갈등은 깨끗하게 감추고 망할 놈의 감정 따윈 숭숭 썰어 쓸모없는 화단에 던져버리고 그쪽은 쳐다보지도, 생각하지도 말자 .. ♧...참한詩 2019.07.03
낮달 / 장옥관 낮달 장옥관 시집간 엄마 찾아간 철없는 딸처럼, 시누이 몰래 지전 쥐어주고 콧물 닦아주는 에미처럼 나와서는 안 되는 대낮에 나와 떠 있다 떠올라서는 안 되는 얼굴이, 맑아서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어도 없는 듯 지워져야 할 얼굴이 떠 있다 화장 지워진 채, 마스카라가 번진 채 여우.. ♧...참한詩 2019.07.02
골목들 / 이하석 골목들 이하석 뜯어내는 집이 황혼 같네 기둥과 대들보의 근육들이 뒤틀렸네 추억처럼 돌이킬 수 없어 보이네 그러나 다 들어내진 않고 교묘한 손질로 겨우 정서의 높낮이를 다시 짜 맞추네 그 옆으로는 시멘트로 깁스한 건물들, 추억 파스로 땜질하고 덧댄 상처들의 건물들이 제화점들, .. ♧...참한詩 2019.06.28
어느 부자가 남기고 떠난 편지 어느 부자가 남기고 떠난 편지 -나의 편지를 읽게 될 고마운 당신에게 오늘도 자네들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먹게나 여기까지 와보니 알겠더군 비싼 돈으로 산 핸드폰 70프로의 성능은 사용하지도 않았고 나의 비싼 차도 70프로의 성능은 필요도 .. ♧...참한詩 2019.04.27
그 슬픔이 하도 커서/이해인 그 슬픔이 하도 커서 이해인 사계절의 시계 위에서 세월이 가도 우리 마음속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전 국민이 통곡한 세월호의 비극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습니다. 5년 전의 그 슬픔이 하도 커서 바닷속에 침몰하여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유족들께.. ♧...참한詩 2019.04.17
능소화 연가/이해인 능소화 연가 이해인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 ♧...참한詩 2019.04.12
저린 사랑/정끝별 저린 사랑 정끝별 당신 오른팔을 베고 자는 내내 내 몸을 지탱하려는 왼팔이 저리다 딸 머리를 오른팔에 누이고 자는 내내 딸 몸을 받아 내는 내 오른팔이 저리다 제 몸을 지탱하려는 딸의 왼팔도 저렸을까 몸 위에 몸을 내리고 내린 몸을 몸으로 지탱하며 팔베개 둘이 되어 소스라치며 .. ♧...참한詩 2019.04.11
줄 타령 줄 타령 줄로 줄로 암암리에 취직을 쉽사리 하고 했던 시절 못자리할 새끼줄 꼬고 앉아 이놈의 팔자 줄이란 줄은 다 어딜 가고 배배 꼬이는 새끼줄만 한 마당 뱀 꼬리처럼 착 달라붙는다며 구시렁구시렁 줄 타령해본 적 있다 아랍어학과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아들 녀석 튀니지까.. ♧...발표작 2019.04.07
무료급식소 무료급식소 수성못 둑을 돌다 보면 둑 가에 죽 둘러서서 새우깡을 새우처럼 방생하는 이들이 있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눈치코치 없는 꼬맹이 물고기들도 다 안다 온종일 북적이는 무료급식소 새우깡 몇 물속으로 던져주면 금세 새우들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어디선가 그 냄새 맡고 몰려온 물고기들은 새우 한 마리 먼저 낚아채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개중엔 동네 건달 행세하며 떼 지어 몰려다니는 패거리족도 있고 새끼 입에 들어가는 새우 꼬리 깡 물고 뜯어먹는 얌체족도 있지만 그래도 부지기수는 자식새끼 먹여 살릴 땟거리 구하려고 한평생 헤엄치며 돌아다닌 나 많은 물고기들 물 한 모금으로 아침 때우고 오늘은 어딜 가서 밥값을 하나 허구한 날 고민했을 이상화 시비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귀동냥만 실컷 .. ♧...발표작 2019.04.07
봄비, 망울 하나 낳아놓고/우영규 봄비, 망울 하나 낳아놓고 우영규 밭둑가 덩그런 컨테이너 지붕에 모여 우는, 미간만큼 열린 창틀 사이에 오종종 모여 우는, 치마 끝에 젖어들어 위태로운 여인을 대뜸 꺼내놓으려나 그 겹겹의 속내를 맨 허벅지처럼 꺼내놓으려나 가지 끝에 기어이 망울 하나 낳아놓고 겨우내 울고 싶어.. ♧...참한詩 201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