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서 만난 형 막장에서 만난 형 두 하늘을 모시고 사는 형이 있었다 파란 새벽하늘 쳐다보고 갱 속으로 들어가 숯검댕이 하늘나라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형, 만나러 갔다 늦가을 해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갑반 일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검댕이들은 다 나의 형 같아 보였다, 보릿고개 시절 온몸에 깜부기.. ♧...발표작 2019.01.13
선문답 같은 사랑 얘기 선문답 같은 사랑 얘기 평생 절간 드나드는 거 밖에 모르고 살아온 노보살 한 분 비슬산 수도암 백중 기도 마치고 내려오다 계곡 한 모롱이 담 카페 모시고 갔더니 피서 온 사람들처럼 빨대를 입에 물고 아메리카노에다 빵 조각 적셔 먹으며 모처럼 소풍을 나오니 살 것만 같다 그러신다 .. ♧...발표작 2019.01.13
반 고흐에게/박지영 반 고흐에게 박지영 이 별에 올 줄 몰랐지 엄마 뱃속에서 이별하고 나와 수많은 이별을 보고 들어 수두룩하게 이별 연습을 한 줄 알았어 이 별에서 이별은 늘 두렵고 서툴러 몇백 광년 떨어져 아득히 먼 줄 알았지 우리는 사다리를 걸쳐놓고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서 저 별로 별을 세며 가.. ♧...참한詩 2019.01.13
새 해를 기다리는 노래/이기철 새 해를 기다리는 노래 이기철 아직 아무도 만나보지 못한 새 해가 온다면 나는 아픈 발 절면서라도 그를 만나러 가겠다 신발은 낡고 옷은 남루가 되었지만 그는 그런 것을 허물하지 않을 것이니 내 물 데워 손 씻고 머리 감지 않아도 그는 그런 것을 탓하지 않을 것이니 퐁퐁 솟는 옹달샘.. ♧...참한詩 2019.01.01
멀리 풍경/나태주 멀리 풍경 나태주 마음은 뜨내기 자주 집을 나가서 쉬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꺼밋한 비구름 하늘 그 아래 비를 맞고 있는 잡목림 안개 자욱 실가지 끝에서 놀고 있다 꽃이 피고 새잎 나는 날 마음아 너도 거기서 꽃 피우고 새잎 내면서 놀고 있거라 ♧...참한詩 2018.12.31
아프지 마, 라고 말할 때/강문숙 아프지 마, 라고 네가 말할 때 강문숙 한 사흘 대답 없던 톡에 깨알 숫자 사라지고 댓글 뜬다 주말엔 폰을 아예 책상서랍에 넣고 지내 일찍 난로를 꺼버린 탓에 감기가 왔나봐 이제 난 좀 괜찮아졌지만 걱정했을 네가 더 걱정이야 너는 아프지 마 아프지 마, 라는 말 참 아프게 다정한 말 .. ♧...참한詩 2018.12.24
심우도(尋牛圖)/사윤수 심우도(尋牛圖) 사윤수 “적게 소유하고 많이 존재하라.” 무소유까지는 어렵겠으나 이 잠언은 내게 큰 힘과 용기를 준다. 훗날, 단칸방에 홀로 앉아 미닫이 방문을 열고 추적이는 가을비를 내다보게 될지라도 나는 삶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라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자료&꺼리 2018.12.23
비수기의 결혼식/변희수 비수기의 결혼식 변희수 한곡의 노래가 사라지는 동안 녹고 있는 얼음 서로의 얼굴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아름다운 조각이 녹고 있었다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새하얀 드레스가 녹고 있는 신부 불가능한 얼음처럼 붉은 입술과 검은 속눈썹이 흘러내렸다 시들지 않는 꽃을 주세요.. ♧...참한詩 2018.12.10
대설/고재종 대설 고재종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주막집 난로엔 생목이 타는 것이다 난로 뚜껑 위엔 술국이 끓는 것이다 밖에는 눈 퍼붓는데 눈 퍼붓는데 괜히 서럽고 괜히 그리워 뜨건 소주 한 잔 날래 꺽는 것이다 또 한잔 꺽는 것이다 세상잡사 하루쯤 저만큼 밀어두고 나는 시방 눈 맞고 .. ♧...참한詩 2018.12.07
어울리지 않는 해변/변희수 어울리지 않는 해변 변희수 해변의 여인이 되고 싶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해변인지 여인인지 명확하진 않다 그냥 잠깐 밀려왔다 다시 밀려가는 해변의 여인이면 되는데 어쩌면 나는 해변도 여인도 아닌 해변과 여인의 조합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 ♧...참한詩 2018.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