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 버려진 것들 나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학교 운동장 설거지를 한다 왼손에는 행주 대신 어리광부리는 아침햇살 꾸러미 한 통 들고 오른손에는 고무장갑 대신 가위 같은 족집게를 손아귀에 끼고 이것저것 주워 담는다 커피 향 쥐꼬리만큼 풍기는 일회용 컵 입에 물고 밤새 사랑 고백한 과자.. ♧...행복 채널 2013.10.17
결빙 결빙 긴급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드릴기로 구멍을 뚫자 겨우내 밥줄 끊긴 물고기들 숨 가쁘게 몰려와 아가미를 내민다 던져준 밑밥에 배고픔의 유혹 뿌리칠 수 없었으리 줄 없는 자의 비애처럼 감춰진 낚싯줄과 바늘마저 꾹꾹 씹어 삼켜버리고 싶었으리 IMF .. ♧...행복 채널 2013.10.17
빗방울 빗방울 천둥번개 눈치 보며 초고속으로 달려온 꼬마 우체부 점점이 디디고 선 발자국마다 물집이 몽글몽글 생겼다 발품팔고 사는 일 어딘들 다르랴 밭고랑 이리저리 돌아 눕히며 콩깍지 등도 긁어주고 때로는 쌩쌩 달리는 차창에 온몸 던져 무료세차도 해주고 밤늦게 혼자서 양철지붕 .. ♧...행복 채널 2013.10.17
초승달 초승달 일주일 째 어실어실 춥고 속이 매스꺼워 토할 것 같다고요 어디, 속살 한번 들여다봅시다 달거리 멎은 지 석 달이 되었다면 태기가 맞겠는데요 깜깜한 밤에 산을 넘거나 개울을 건널 때 주의하셔야 돼요 담배연기 자욱한데도 가지 마세요 별똥 떨어지듯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나.. ♧...행복 채널 2013.10.17
냉장고 냉장고 이사 가는 날 아침 냉장고도 발 동동 구르며 따라나선다 그 나이 되도록 감기몸살 한번 않더니 긴장 탓인지 머리가 불덩어리다 결국 당뇨합병증이 와서 대수술 받았다 운동 부족에다 구석진 공간에서 배 꾹꾹 눌러가며 곰국이면 곰국 짜고 맵고 상한 음식도 가리지 않아 그렇단다.. ♧...행복 채널 2013.10.17
슬픈 여행 슬픈 여행 암수술 받으러 서울 간다는 말씀 차마 어머님께 드리지 못하여 집사람과 나는 중국여행 일주일 다녀오는 걸로 숨겨두자 그랬네 텅 빈 여행가방 손잡고 몇 걸음만 가벼이 떼어보자 그랬네 동서울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암만 생각해봐도 그 약속은 죽는 날까지 품고 가야 할 가.. ♧...행복 채널 2013.10.17
근황 근황 콩팥 주머니 일부 도려낸 지 2주째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호치키스로 쿡쿡 찍어둔 수술 자국을 바라본다 10년은 묵은 듯한 지네 한 마리 옆구리 척 달라붙어 있다 그 언저리엔 또 다른 물집 포도송이처럼 번져 온몸을 향해 연발탄을 쏘아댄다 의혹 속의 혹 하나 떼냈을 뿐인데, 땅은 푹.. ♧...행복 채널 2013.10.17
바람을 등에 업다 바람을 등에 업다 흩어졌다 모여드는 바람 탓에 무릎관절은 늘 삐걱거렸다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진 바람을 업은 어머니, 대청동 꼭대기 판잣집에서 메리놀 병원까지 수 백 개의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방울방울 구르는 땀방울 장단에, 바람은 잠이 들기도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허.. ♧...행복 채널 2013.10.17
늦가을 오후 늦가을 오후 우리 속에 갇힌 닭 한 마리 지붕 위로 날아올라 탈옥수처럼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홍시를 쪼아먹는다 어느 새 벼슬이 판을 치는 세상 눈치를 보며, 나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행복 채널 201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