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730

물빛 37집 평설-주인, 돌아오다 / 고미현

주인, 돌아오다 고미현 책상 위 삼각형 이름표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봄꽃이 피고 지는 동안 백년 은행나무는 숨죽이며 서 있다 닫힌 교문이 아슬아슬하게 열리는 초여름 아침 마스크 너머로 함박웃음 머금고 기쁨을 어깨에 멘 아이들은 들뜬 걸음으로 콩콩콩 들어선다 2학년 5반, 보고 싶은 얼굴들 울컥, 눈시울이 젖는다 주인이 주인으로 돌아온 때늦은 새 학년 첫날 마음은 푸릇푸릇 설레는 3월이다 눈빛으로 말하고 혼자서 놀아도 첨벙첨벙 바다를 누비는 가득한 행복 ----------------------------------------------------------------------------- 고미현 님의 시편은 우리네 삶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가를 간절히 짚어주고 있네요. ..

물빛 37집 평설-해후 / 이규석

해후 이규석 비쩍 마른 아우 마른 땅에 뿌리내린 해바라기처럼 바람이 일 때마다 흔들거렸다 솟대 곁에 서서 살려 달라 목청껏 소리쳐도 그 말, 신작로 위로 나뒹굴었다 마른 목이 타들어가 폭우 쏟아지던 날 고향으로 돌아와 묻혔다 수의도 못 얻어 입은 몸 흙 이끼 덮고 가시투성이 두릅나무 두르고 있더니만 사십 년 만의 볕 바라기, 양지바른 소나무 아래로 새 집 지어 옮긴 아우는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 이규석 님의 ‘해후’라는 시편을 대하니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떠올려보게 되는군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던가요. 지연, 학연을 넘어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간의 인연은 참으로..

2021 시문학 10월호 이달의 문제작-김욱진 『빈집·2』

'모성', 지고지순한 사랑의 원형-양병호(시인, 문학평론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흙집 지문은 다 사라지고 방문 왼손 편 벽 언저리엔 지팡이처럼 짚고 드나든 손자국만 하나 쿡, 찍혀있다 백일 전 돌아가신 어머니 시집 올 때 신고 온 코고무신 한 켤레 가지런히 놓여있는 봉당 앞에서 무심코 지붕 올려다보니, 그단새 처마 밑은 온통 부동산 투기꾼들로 북적인다 거미는 얼기설기 줄을 쳐뒀고 땅벌도 간간이 날아들어 이곳저곳 갸웃거리고 자식새끼 줄줄 딸린 제비 부부는 집터고 뭐고 따져볼 겨를도 없이 애비는 써레질한 무논에서 지푸라기 다문다문 짓이겨 와 다섯 식구 살 집 한 채 짓는 중이고 어미는 새끼들 땟거리 구하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집 주인은 오간데 없는데 빈집에 큰 손은 잦아들고 걱정이 이만저..

모든 것은 일기 일회

모든 것은 일기 일회 법정스님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아니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자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멸을 두려워 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죽으라.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

♧...자료&꺼리 2021.09.27

저 거리의 암자 / 신달자

저 거리의 암자 신달자 어둠이 깊어가는 수서역 부근에는 트럭 한 대 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 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주인과 손님이 함께 출렁출렁 야간여행을 떠납니다. ​ 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 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 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 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 속풀이 국물이 바글바글 냄비에서 끓고 있습니다 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 ​ 젓가락으로 잡던 산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 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내지 못합니다. 답답한 것이 산낙지 뿐입니까 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 버린 여자도 서울을 통채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게워냅니다 ​ 비워진 소주병이 ..

♧...참한詩 2021.09.11

김욱진 시인 매일신문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5)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http://news.imaeil.com/CultureAll/2021090711530289715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詩)- (5)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누구나 시인입니다. 잠재된 그런 감성을 깨우려면 첫째, 틈틈이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해요. 일상 접하는 사물이나 대상을 세심히 관찰하고 들여… news.imaeil.com

김욱진 시인 매일신문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4)좋은 시란 무엇인가

http://news.imaeil.com/CultureAll/2021083011241791087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詩)- (4)좋은 시란 무엇인가 정답은 없지요. 좋은 시인가 아닌가에 대한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니까요.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널리 읽혀지는 시가 좋은 시 … news.imaeil.com

안개라는 개犬 외 3편 / 김겨리-김명배 문학상

안개라는 개犬 김겨리 나무와 집과 소리와 여명까지 삼키는 잡식성 맹견 온몸이 어금니와 식도로 된 독종이다 컹컹 짖을 때 날리는 축축한 비말은 번식세포, 안개는 바람의 병법으로 빠르게 영역을 점령한다 부드러운 이빨로 무엇이든 질겅질경 씹다 통째로 삼키는 안개 한번 물면 놓지 않는 흡혈성 식도를 가진 안개는 아침이 주식이다 안개의 먹이사슬들은 눈이 퇴화되는 대신에 청력이 예민하다 나무도 돌도 물도 풀잎도 모두 청력이 발달된 종들 상처의 바탕, 울음의 면적, 고통의 질감처럼 안개를 개복하면 온갖 씨앗들이 발아한다 안개의 부리부리한 눈을 본 적이 있는가 마주치면 송두리째 빨려들 듯한 무자비한 혼곤으로 꼼짝없이 당하고야 마는, 촉촉이 젖는 공포에 대해 상온을 밑도는 체온이라 냉혈인 듯하지만 그의 소화기관을 거쳐 ..

방음벽 / 마경덕

방음벽 마경덕 돌진하는 새들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봄부터 이어진 박새 참새 곤줄박이의 투신이 지역신문 헤드라인이 되려면 더 많은 새들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 새들만이 아니었다 사차선 차도에서 튕겨 나와 벽과 충돌한 굉음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신기루와 비행이 만나는 지점, 이곳은 묘지였다 질주하던 속도와 정면충돌한 사건이 중앙선을 넘고 벽을 뛰어넘었다 무단침입한 잡음은 아파트보다 높이 자랐다 최대한 키를 높여 달려드는 소리를 죽이겠다고 잠을 설친 의견들이 둘러앉았다 방음벽은 마지막 배수진 주민들은 새들 따위는 금방 잊었다 새의 죽음을 이야기한 시인이 있었지만 날아오는 화살에 곧 입을 다물었다 담쟁이를 심자던 숲해설가도 일조권에 밀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새들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새들은 스스로 머리를..

♧...참한詩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