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암 가는 길1 도성암* 가는 길1 -비슬산1 멀리 동녘 바다 햇살 한 바랑 담아와 산문山門 활짝 열고 새벽 예불하던 산새 한 마리 바위 틈새 쪼그리고 앉은 내 마음 몇 모금 물고 휜 산허리 접어 오를 제, 어디선가 무심히 스며드는 산사의 종소리 그 여음餘音 사이로 물안개 피어오르고 어느 새 날갯죽지 흠뻑 젖은 비.. ♧...발표작 2010.05.23
도성암 가는 길2 도성암 가는 길2 -비슬산2 소슬바람 눈치 살피며 까투리 한 마리 오므렸던 날개를 펴다 그 틈새로 으스름 달빛 한 바랑 걸머지고 낯익은 오솔길 들어서다 그림자마저 지우고픈 가을 어스름 어디선가 날다람쥐 한 마리 잔솔가지 타고 내려와 내 그림자 밟고 지나가다 도성암 가는 길섶 뭉게구름처럼 퍼.. ♧...발표작 2010.05.23
가을 속의 나 가을 속의 나 -비슬산9 내 가슴 속에서 웅크리고 울던 귀뚜리 울음소리, 밤새 번지고 번져 메아리처럼 번져 산봉우리 비며대며 날아오른다. 문필봉 휘돌아 관기봉 너머 눈 푸른 도성선원 스님들 마음 귀퉁이 지나 바위틈 새어나오는 법문 몇 모금 받아 마시고 내 품으로 되돌아오는 메아리. 물안개 포.. ♧...발표작 2010.05.23
소재사에 가다 소재사에 가다 -비슬산8 온통 야단법석이다 법당 앞마당 가랑잎들, 석탑 언저리 기웃거리는 저녁 햇살 등에 업고 돌계단 엉거주춤 내려선다. 겹겹이 포개진 눈빛 새로 노잣돈 조르듯 지나가는 풍경소리, 허공으로 내 발꿈치 떠밀어 올린다 맨 아래 깔린 잎은 의식 불명 상태 내 발목 꽉 잡았다 스르르 .. ♧...발표작 2010.05.23
고요의 聖者 고요의 聖者 -벙어리 우주의 소릴 눈으로 듣고 말하는 깊게 잠든 그의 귀와 입은 묵묵부답 우뢰 같은 소리 귓전을 휘갈겨도 잠잠하기만 한 눈빛 하나로 온 세상을 벗하는 고요의 성자 텅 비어버린 그의 입과 귀는 내생을 염念하고 온몸 가득 뿌리내린 그의 눈은 숫제 선정禪定에 들다 (시문학 2004년 3월.. ♧...발표작 2010.05.23
공룡, 발자국 공룡, 발자국 -상족암에서 누가 이토록 뜨겁게 살다 갔나 외진 바닷가 한 모퉁이 망사 같은 잔솔가지 살몃 걸치고 알몸으로 길게 드러누운 병풍바위는 아직도 수 억 년 전의 추억을 머금은 채 누군가 남기고 간 발자취의 주인을 찾고 있으니 까마득한 전전생의 인연 찾아가듯 이제, 태초의 몸짓으로 한.. ♧...발표작 2010.05.23
선방에서 선방禪房에서 -비슬산4 풍경 소리 한 바랑 걸머지고 저녁 노을 도반道伴 삼아 바람의 아궁이에 향불 사르다 홀연 스쳐 지나는 저승 길섶 잔설殘雪에 기댄 햇살 몇 줌 주워 관음보살 입술에 사르르 군불 지피니 비슬산 자락이 온통 염불 소리로 달아오르네 (생각과 느낌 2004 봄호, 녹야원 제9집) ♧...발표작 2010.05.23
가난한 날의 잔상2 가난한 날의 잔상2 어릴 적 나는 재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박 넝쿨처럼 몰래 담벼락 타고 지붕으로 살살 기어 올라가 폭 삭은 지푸라기 만지작거리며 어렴풋 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내었지 봉당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햇나락 쭉정이 키질하시던 할머니 풀죽은 목소리로 “애비야, 올 추석엔 박 속.. ♧...발표작 2010.05.23
현해탄을 건너다 현해탄을 건너다 -선상에서-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경음악 틈새로 울려 퍼지는 뱃고동소리 바닷길이 열리고 항구의 불빛 점점 뒷걸음질쳐 오면 나는 가만 눈을 감는다 누군가 허전한 배의 꼬리 물고 자꾸 뒤따라오는 것만 같다 여태 무심히 대했던 조국 하늘의 별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겹게 숨.. ♧...발표작 2010.05.23
가난한 날의 잔상1 가난한 날의 잔상1 퉁퉁 부르튼 종아리에 찰거머리 서너 마리 빚쟁이처럼 달라붙어 떼를 써도 그저 아무 일 없는 양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시는 당신 삭은 밀짚모자 푹 눌러쓰고 지렁이 굼벵이 더부살이하는 구불구불한 밭뙈기 고랑을 빚쟁이 엎듯 줄줄 갈아엎으시는 당신 순사 눈길보다 더 따가.. ♧...발표작 2010.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