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 적반하장 백수가 자전거 타고 가파른 산길 내려오다 신새벽 들이받고 전치 6주 부상을 입었다 갑자기 역주행하면 어떡해요 방향을 바꾸려면 깜빡이를 켜셔야죠 보이지 않는 벽까지 다 볼 수는 없잖아요 입원비 자전거 수리비에다 두 달치 생활비까지 전부 물어내세요 하하 무슨 그런 얼.. ♧...발표작 2014.06.25
우포늪 우포늪 철없이 날아드는 새들의 공항이다 온종일 비행하고 돌아온 흰두루미 떼 활주로 한복판 둘러앉아 아직 회항하지 못한 피붙이들에게 연착륙 신호를 보내며 고요히 저녁기도를 한다 또 어디론가 비상하려는 영혼들을 위해 빈 둥지 트는데 어둠을 밀어내며 불시착하는 재두루미 한 .. ♧...발표작 2014.03.05
빈집 빈집 내게는 집이 여러 채 있다 그중에 으뜸은 우주宇宙 한 모퉁이 분양받은 몸집 제일 꼭대기 층엔 골방 둘 그 아래층은 초능력 통신망 닥지닥지 붙은 방 다섯 거기서 숨 한번 길게 들이쉬고 내려서면 마주 보고 마음 나누는 방이 둘 그 아래 밥집 한 채 또 그 아랜 똥집 맨 아래층엔 몸종.. ♧...발표작 2013.12.08
나무 한 그루 나무 한 그루 방사선 치료를 받고 노숙자처럼 푹 퍼져 누워 있는 나목裸木 먹구름과 동거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무는 시름시름 말라들기 시작했다 한 그루 햇살도 홀쭉해졌다 간간이 바람 와서 팔다리 주물러주고 갔다 노래 부주하고 떠난 새들의 발자국 밟으며 나, 무로 돌아가는 밤.. ♧...발표작 2013.11.28
벌어진 밤송이 벌어진 밤송이 봄여름 밤마다 핵분열이 시작되었겠다 설익었던 밤 송이송이 자궁이 벌어진다 핵가족화 열풍이 분다 여태 주먹만한 단칸방에서 몸 한번 돌아눕지 못하고 가시기둥 세워 바람막이하며 산 밤송이 가족 갑작스레 떠나보낸 자식놈들 생각하면 지어미 가슴 움푹 다 패였겠다 .. ♧...발표작 2013.10.24
버려진 것들 버려진 것들 나는 매일 출근하자마자 학교 운동장 설거지를 한다 왼손에는 행주 대신 어리광부리는 아침햇살 꾸러미 한 통 들고 오른손에는 고무장갑 대신 가위 같은 족집게를 손아귀에 끼고 이것저것 주워 담는다 커피 향 쥐꼬리만큼 풍기는 일회용 컵 입에 물고 밤새 사랑 고백한 과자.. ♧...발표작 2013.09.10
줄다리기 줄다리기 -88회총동창회 펄럭이는 교기조차 숨죽인 본부석 앞 한 뱃속을 나온 팔팔한 탯줄 꿈틀꿈틀 등꽃 뒤적이던 바람 꼬셔 촘촘 얽혀 있다 캬아! 술맛 죽이고 술술 잘도 넘어간다 배배꼬며 살아온 자네도 한잔해봐 사는 일이 꼬이고 풀리는 것 아니더냐 끌려갔다 끌려오는 일 아니더냐.. ♧...발표작 2013.06.13
행복채널 행복채널 김욱진 가끔 채널을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묏등에 염소 고삐 풀어놓고 술래잡기하며 뒹굴던 코흘리개 시절로 어머니 손잡고 산비탈 굽이굽이 돌아 외갓집 가는 길 어스름 서리하던 복숭나무 아래로 꽁보리밥 싸가는 게 부끄럽다고 생떼부리며 드러누웠던 골목길로 고지박이 .. ♧...발표작 2013.06.13
빈집 빈집 내게는 집이 여러 채 있다 그중에 으뜸은 우주宇宙 한 모퉁이 분양받은 몸집 제일 꼭대기 층엔 골방 둘 그 아래층은 초능력 통신망 닥지닥지 붙은 방 다섯 거기서 숨 한번 길게 들어 쉬고 내려서면 마주 보고 마음 나누는 방이 둘 그 아래 밥집 한 채 또 그 아랜 똥집 맨 아래층엔 몸.. ♧...발표작 2013.03.30
슬픈 여행 슬픈 여행 암수술 받으러 서울 간다는 말씀 차마 어머님께 드리지 못하여 집사람과 나는 중국여행 일주일 다녀오는 걸로 숨겨두자 그랬네 텅 빈 여행가방 손잡고 몇 걸음만 가벼이 떼어보자 그랬네 동서울 가는 고속버스 속에서 암만 생각해봐도 그 약속은 죽는 날까지 품고 가야 할 가.. ♧...발표작 201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