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 142

수상한 시국-코로나19

수상한 시국-코로나19 김욱진 정체불명의 능력자다 그는 사교적이고 때로는 치밀하고 대범하다 흡사 신종 다단계 회사를 차린 유령 같다 치고 빠지는 수법이 신출귀몰하다 눈 깜짝할 사이 훔치고 이간질하고 아무데나 달라붙어 떼쓰고 시비 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기꾼 같다 어눌한 척하면서 할 말은 다하고 수줍은 척하면서 할 짓은 다하는 반갑잖은 손님이다 말이란 말에는 다 끼어들고 소문이란 소문은 다 퍼뜨리는 슈퍼 바이러스 전파자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객기를 부리나 싶다가도 밥 먹을 때나 차를 타고 달릴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여럿 있을 때나 심지어 정신병동까지 스며드는 걸 보면 인간시장 간보러 온 염탐꾼 같다 출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마스크 사러 약국 앞 줄서있다가도 그의 보이..

♧...발표작 2020.04.10

두레반

두레반 모처럼,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손수 장만한 칼국수 온 가족이 두레반에 둘러앉아 후루룩 소리 내어 먹는다 주물럭주물럭 반죽한 밀가루 안반 위에다 올려놓고 풍진 세상 모퉁이 돌고 돌아 홍두깨로 모난 녀석 볼 한 번 더 비벼주며 키 몸무게 자로 재듯 빚은 손칼국수 어머니 손맛이 절로 느껴지는 저녁이다 바른손 새끼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올 상 싶으면 약지 중지 손구락은 원을 그리며 다독이고 왼손 엄지 중지에 지그시 힘 실어주는 어머니의 손끝은 섬섬옥수다 둥근 세상 일궈가는 어머니 손놀림 어깨 너머로 훔쳐보며 우리 칠남매는 저마다 한 가락씩 하는 손가락을 내밀고 겻불에 국수 꼬랑지 구워 나눠먹는 법 익혔다 그러는 사이, 바람에 밀리고 밀린 안반은 헛간으로 밀려나버렸고 한평생 국수만 밀어댄 홍두깨는 부지..

♧...발표작 2019.12.06

패 편을 갈라 화투를 치다 보면 패가 잘 풀리는 사람과 한 편이 되는 날은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그저 푹 무질고 앉아 싸 붙이고는 엉덩이만 들썩여도 돈이 절로 굴러 들어온다 패라는 게 그렇다 꽃놀이패에 걸려 패싸움을 하다가도 팻감이 없으면 한 방에 폐가망신 해버리기도 하고 패거리도 그렇다 얼씬 보기엔 반상 최대의 패처럼 보여서 누구나 한번쯤은 이 패거리 저 패거리 기웃거려 보는 거다 별 밑천 없이 들락날락하기도 편하고 급할 시는 그 패를 마패처럼 내밀어 은근슬쩍 방패막이로 써먹기도 하고 팻감이 궁할 땐 이 패에서 저 패로 저 패에서 이 패로 철새처럼 줄줄이 옮겨 다니면서 늘상 화기애애한 척 돌돌 뭉쳐 돌아다니며 놀고먹기엔 딱 그저 그만이다 패가 폐가 되는 줄도 모르고 패거리가 난무하는 세상 한 ..

♧...발표작 2019.08.20

무료급식소

무료급식소 수성못 둑을 돌다 보면 둑 가에 죽 둘러서서 새우깡을 새우처럼 방생하는 이들이 있다 그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 눈치코치 없는 꼬맹이 물고기들도 다 안다 온종일 북적이는 무료급식소 새우깡 몇 물속으로 던져주면 금세 새우들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어디선가 그 냄새 맡고 몰려온 물고기들은 새우 한 마리 먼저 낚아채려고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개중엔 동네 건달 행세하며 떼 지어 몰려다니는 패거리족도 있고 새끼 입에 들어가는 새우 꼬리 깡 물고 뜯어먹는 얌체족도 있지만 그래도 부지기수는 자식새끼 먹여 살릴 땟거리 구하려고 한평생 헤엄치며 돌아다닌 나 많은 물고기들 물 한 모금으로 아침 때우고 오늘은 어딜 가서 밥값을 하나 허구한 날 고민했을 이상화 시비 앞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귀동냥만 실컷 ..

♧...발표작 2019.04.07

58년 개띠

58년 개띠 김욱진 계급장 떨어질락 말락 하는 58년 개띠 동갑내기 계모임 자리에서 폭탄주가 계주하듯 몇 순배 돌고 오늘로 술술 소임을 다 마친 계주가 서운했던지 벌떡 일어나 마지막 건배를 한다며, '우리가' 그러자 걔들은 일제히 '축이다' 하고 짖어댔다 계파가 난무하는 세상 한 때, 나는 너의 축이었고 너는 나의 우리였다 나는 너를 주인처럼 섬겼고 너는 나를 종처럼 부려먹었다 나 속엔 늘 우리 속 개 한 마리 숨어 살고 있었다 내일 아침, 걔들이 없는 이 세상 조간신문 사회면 한 구석엔 '각계각층에서 모인 개들은 몸부림쳤다' 라는 기사 개꼬리만하게 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여태 걔를 나라고 믿었고 걔는 나의 축이었다 58년 개띠들은 우리의 한 축이었다 -2018 대구의 시

♧...발표작 2019.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