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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 / 문정희

유방 문정희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드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을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매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놨던 유방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지금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축..

♧...참한詩 2021.01.24

김욱진 시인의 고향을 찾아서-경북 문경

김욱진 시인의 고향을 찾아서-경북 문경 내 고향 지보실(知保室) 고향이란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라고 해두자. 고향은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정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면서도, 정작 고향이라는 말을 명확히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 정이 든 곳, 일정한 형태로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다. 고향은 공간이며 시간이며 마음이라는 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로 굳어진 복합된 심성이라고 해두자. 이제 환갑진갑이 지나고 직장마저 은퇴하고 보니 고향 언저리 산천이 그림자처럼 달라붙고 어릴 적 불알친구들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남섬부주 동양 대한민국 경상북도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259번지에 본적을 둔 안동 김씨 양졸제파 26대손 ..

때로는 물길도 운다 / 이영춘

때로는 물길도 운다 이영춘 냇가에 앉아 물소리 듣는다 물소리에 귀가 열리고 귀가 젖는다 물길이 돌부리에 걸린다 풀뿌리에 걸린다 걸린 물길 빙ㅡ빙 원 그리며 포말이 된다 물길도 순리만은 아니었구나 이 지상의 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밀려나고 밀어내는 등(背) 뒤편 같은 것, 오늘 이 봄, 냇가에 앉아 물길도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소리 없는 소리로 울며 간다는 것을 알았다

♧...참한詩 2021.01.14

눈물이 온다 외 1편 / 이병률

눈물이 온다 이병률 왜 눈이 온다, 라고 하는가 비가 온다, 라고 하는가 추운 날 전철에 올라탄 할아버지 품에는 작은 고양이가 안겨 있다 고양이는 이때쯤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는지 할아버지 어깨 위로 올라타고 사람들 구경한다 고양이는 배가 고픈지 울기 시작했는데 울음소리가 컸다 할아버지는 창피한 것 같았다 그때 한 낯선 청년이 주머니에서 부스럭대며 뭔가를 꺼내 작은 고양이에게 먹였다 사람들 모두는 오독오독 뭔가를 잘 먹는 고양이에게 눈길을 가져갔지만 나는 보았다 그 해쓱한 소년이 조용히 사무치다가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안으로 녹이는 것을 어느 민족은 가족을 애도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외출할 때 옷깃을 찢어 표시하고 어느 부족은 성인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성기의 끄트머리를 잘라내면서 지구의 맨살을 움켜쥔다..

♧...참한詩 2021.01.11

부지깽이 / 최정란

부지깽이 최정란 아궁이에 몸을 넣어 불을 뒤집는다 아직 불붙지 않은 나무들과 이미 불붙은 나무들 한 몸이 되도록 멀리 있는 가지들 가까이 옮기고 바싹 가까운 가지들 틈을 벌린다 공기가 들어갈 틈이 불의 숨길이다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한 부분은 교차하듯 밀착되게 나머지 부분들은 엇갈리게 잡목과 장작에 다리와 각을 만들어준다 불꽃의 절정이 각을 무너뜨리면 불이 옮겨 붙은 나는 점점 짧아지고 더 이상 불을 뒤집을 수 없을 만큼 길이가 짧아지면 불 속으로 몸을 던진다 영원으로 날아오르는 불새 아니어도 인생의 질량만큼 불살랐으니 후회 없다 시집『장미키스』2018

♧...참한詩 2021.01.03

홍세화 “민주건달들이여 진보를 참칭하지 마라”

홍세화 “민주건달들이여 진보를 참칭하지 마라”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0-12-19 10:00:01 2021년 01월 호 홍세화 “민주건달들이여 진보를 참칭하지 마라” ● 文, 임금님 그만두고 대통령으로 돌아가라 ● 국정 철학 없는 대통령, 선의의 약속과 침묵의 정치 ●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건달들 ● 공수처는 더 큰 권력일 뿐… 민주적 통제 아니다 ● ‘우리가 조국이다!’와 상징폭력 ● 도대체 어떤 멘탈이기에 추미애를 수호하나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조영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2020년 12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

♧...자료&꺼리 2020.12.21

서산 가야산.. 넘어가는 해를 잡아 둘 길 없어.. 가야산을 깎아 내고 싶어라

[12월 마운스토리] 서산 가야산.. 넘어가는 해를 잡아 둘 길 없어.. 가야산을 깎아 내고 싶어라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입력 2020.12.21. 09:43 수정 2020.12.21. 백제 때부터 불교 번성한 산인 듯.. 동남쪽은 토산, 서북쪽은 돌산 가야산 정상에서 맑은 날이면 서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연기 모래 구름 나무 사이로 조그만 점 하나 指點烟沙霧樹間 조각배가 가로질러 만조에 돌아오네 小舟橫折晩潮還 서산에 급히 넘어가는 해를 잡아둘 길 없어 無緣得駐西飛日 만 겹 가야산을 깎아내고 싶어라 欲剗伽倻萬疊山 조선 말기 성리학자 조긍섭이 쓴 칠언율시다. 가야산을 깎아내서라도 넘어가는 해를 잡고 싶은 작가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 해를 정리할 시점이 되면 누구나 가는 세월을 붙잡고 마무리 ..

♧...자료&꺼리 2020.12.21

사과를 깎으면서 / 이진흥

사과를 깎으면서 이진흥 깨물어보면 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그것, 꼼짝없이 견디던 겨울 의 칼바람과 쓰린 상처를 핥아주던 봄날의 햇살, 귀를 찢는 천둥에 하르르 몸을 떨던 어린 잎새들, 허리를 적시던 빗물과 목덜미를 간 질이던 애벌레의 감촉, 땡볕을 가려주던 구름과 놀빛 속으로 날아 가던 곤줄박이 행적..., 그 모든 기억을 모아 둥글게 빚어낸 그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나, 눈 감고 한 입 깨물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우주의 비밀인 것을,

♧...참한詩 2020.12.14

불침번 / 유안진

불침번 유안진 가끔 때로는 자주 어지럽다 지구가 쉬지 않고 돌고 있다는데 왜들 어지럽지 않다는가? 자전에서 공전까지 하느라고 지친 나머지 튕겨나가거나 굴러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누구라도 있어야지 '성질이 팔자'라는 속언대로 나 하나가 무슨 위안 될까마는 그래도 잠들 수가 없는데 10년 담당의사는 약만 바꿔주거나 한두 알씩 보태주기만 한다.

♧...참한詩 2020.12.14

겨울나무 / 김종택

겨울나무 김종택 밤길을 걷다가 길모퉁이에 혼자 서 있는 나목(裸木)을 만났다 밤이 이처럼 깊도록 눕지 않고 빈 몸으로 서 있는 것이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아 다가가 눈 감고 끌어안으며 물었다 비로소 나목이 입을 연다 평생을 베풀고 살았어요 열매도 그늘도 풍경도 주고 살았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며 살았어요 이 겨울이 가면 봄이 또 오겠지 떠나간 그 사람도 찾아오겠지 변함없이 살았어요 봄에는 꽃 피우고 가을이면 낙엽 지우고 참고 참으며 살았어요 온갖 수모 발길질 참으며 살았어요 그래도 겨울밤이 이렇게 깊어 가면 혼자 울어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고독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따라갈 수 없는 슬픔에 혼자 이렇게 밤마다 울어요 다 듣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울지는 마 이 엄혹한 계절을 살면서 아프지 ..

♧...참한詩 2020.12.12